지난 정부 때 두 차례 인상됐던 고용보험료율이 또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저출생 대응을 위해서 내년 육아휴직급여 예산을 약 1조5000억원 늘렸는데, 정작 재원이 되는 고용보험기금은 사실상 만성 적자 상태인 데다 정부가 기금에 직접 지원하는 규모는 단지 1500억원만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급여를 더 주겠다고만 하고 재원은 ‘알아서 마련하라’는 식인 것이다.
◇내년 육아휴직급여 예산 대폭 증가
21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내년 육아휴직급여 예산의 정부안은 4조225억원이다. 올해 2조4968억원보다 약 1조5000억원 늘었다. 이는 2022년(2조772억원), 2023년(2조2615억원)과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대폭 늘어난 것이다.
이런 예산 책정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의 강력한 주문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저출생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발언권이 세진 저고위가 관계 부처에 육아휴직급여 확대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부터 육아휴직급여 상한액을 현재 월 15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현재 육아휴직급여의 재원인 고용보험기금의 실업급여 계정이 누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육아휴직급여는 2001년부터 고용보험기금에서 일부를 충당해 왔다. 지난해 말 기준 실업급여 계정 적립금은 약 3조7000억원이다. 겉으로는 흑자처럼 보인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때인 2020년부터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빌려온 7조7000억원을 빼면 사실상 4조원 규모 적자인 것이다.
기금이 부족하면 정부가 세금으로 넣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직접 지원액은 충분히 늘지 않았다. 내년 고용보험기금 실업급여 계정에 지원되는 일반회계전입금은 5500억원 규모다. 올해 4000억원보다 1500억원 늘릴 예정일 뿐이다.
이에 육아휴직급여 지출에서 정부의 직접 지원액(일반회계전입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올해 16%에서 내년 13.7%로 되레 감소하게 된다. 지원금 증가 폭이 지출이 늘어나는 폭에 한참 못 미치게 되면서 육아휴직급여 지출에 필요한 돈을 기금에서 더 많이 끌어와야 하게 됐다.
◇기재부 “고용보험기금이 감당하라”
기재부 입장에선 지난해 세금이 56조4000억원 덜 걷혀 역대 최대 세수 결손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에도 약 3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세수 결손이 예상되면서 육아휴직급여 직접 지원액을 크게 늘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고용보험 가입자가 최근 늘고 있고, 고용보험기금 운용 수지도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며 “현재 고용보험기금으로도 내년 육아휴직급여 지출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상 적자 상태인 고용보험기금으로 대폭 늘어난 육아휴직급여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고용보험료를 올리거나, 공자기금에서 또다시 돈을 빌려올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고용노동부가 작성한 ‘2023회계연도 고용보험기금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고용보험기금의 실업급여 계정은 2020년 2485억원 적자, 2022년 5557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겨우 659억원 흑자를 내는 데 그쳤다.
고용보험료율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9년 1.3%에서 1.6%로 올랐고, 2022년 1.8%로 다시 인상됐다. 고용보험료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각각 절반인 0.9%씩 분담한다.
일각에선 육아휴직급여에서 기금이 아니라 정부 직접 부담분을 늘리고 이를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저출생 문제가 국가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인 만큼 사업주와 근로자가 부담하는 고용보험기금에서 나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20·21대 국회에서도 보험사업에 드는 비용 중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예산 비율을 ‘전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 이상’으로 규정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작년 고용보험료 수입이 14조4000억원쯤이니 적어도 2조8000억원쯤을 정부가 직접 예산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