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미국 내 ‘세타 2 엔진’ 결함 조사를 마무리 지은 현대·기아차가 이번엔 또 다른 엔진 문제로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 42만4000대를 리콜(시정조치)한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 조사에서 엔진 고장에 따른 화재 발생 가능성이 지적됐기 때문이다.
5일(현지 시각) 로이터·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기아차 미국법인은 이날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 29만5000대를 리콜한다고 밝혔다. NHTSA가 현대차 차량 12만9000대에 대한 리콜 결정을 밝힌 지 하루 만에 기아차도 리콜을 결정한 것이다.
리콜 대상 차량은, 기아차의 경우 2012~2013년식 쏘렌토, 2012~2015년 포르테와 포르테 쿱, 2011~2013년 옵티마 하이브리드, 2014~2015년 쏘울, 2012년 스포티지가 포함됐고, 현대차는 2012년 싼타페, 2015∼2016년 벨로스터, 2011∼2013년과 2016년 쏘나타 하이브리드가 포함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미국에서 리콜이 결정된 만큼 국내 동일 차종에 대한 리콜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NHTSA는 결함 조사에서 현대·기아차 일부 차종의 ‘커넥팅 로드 베어링(엔진 크랭크축 내 베어링)’이 일찍 마모돼 엔진 손상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고, 이로 인해 엔진이 꺼지고 기름이 뜨거운 표면 위로 누출되면서 화재 발생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현대·기아차는 리콜 방식으로 우선 차량 엔진에 문제가 생기기 전 징후를 감지할 수 있는 엔진 진동 감지 시스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NHTSA 조사에서도 뚜렷한 결함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예방용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우선한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 측은 “제조상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도 “화재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이번 리콜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NHTSA는 리콜 대상 차량에 대한 검사를 했을 때 엔진 내 베어링 손상이 발견되면 엔진이 교체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리콜 결정은 지난달 27일 현대·기아차가 과징금과 품질 개선 비용 등으로 1억3700만달러(약 1500억원)를 내기로 하면서 마무리된 ‘세타 2 GDi’ 엔진 결함과는 별개의 사안으로, 지난 1년 반 동안 이어진 별도 조사에 따른 조치다. NHTSA는 미국 내 현대·기아차 차량 소유주들로부터 3100여건의 화재, 103명 부상, 1명 사망 등의 민원을 접수받고 작년 4월부터 관련 조사에 착수했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세타 2 엔진 결함과 관련된 조사를 마무리 짓기 위해 지난달 27일 8100만 달러(약 88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내기로 NHTSA와 합의했다. 안전 성능과 품질 강화를 위해 내부 투자하기로 합의한 금액까지 합치면 총 1억3700만 달러(약 1488억원) 규모다. 이로써 2017년부터 이어진 세타 2 엔진 결함과 관련된 법적·행정적 절차는 모두 마무리됐지만 또 다른 엔진 문제에 따른 리콜이 이어지면서 품질 논란은 계속해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다.
현대차그룹은 2009년 개발한 세타 2 엔진에서 떨림 및 시동 꺼짐 등 결함이 발생하자 작년 10월 집단소송을 건 미국 소비자들과 합의하면서 2010~2019년 한국과 미국에서 판매한 469만대의 차량 엔진을 평생 보증해주기로 했고, 올해 3분기 공시에선 이를 위한 충당금 3조3600억원(현대차 2조1000억원+기아차 1조2600억원)을 쌓아놨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