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국내 공식 출시된 BMW 신형 4시리즈 앞쪽엔 가로로 좁고 세로로는 긴, ‘버티컬(수직형) 그릴’ 디자인이 적용돼 있다. BMW 대부분 모델의 그릴은 가로가 더 넓은 수평형이다.
낯선 디자인을 두고 아니나 다를까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다. ‘비버의 앞니’나 ‘돼지코’ 같다는 혹평(酷評)이 흔한 편이고, ‘신선하고 파격적이라 마음에 든다’는 호평(好評)은 아무래도 드물다. 물론 ‘익숙하지 않을 뿐 보다 보면 괜찮을 것 같다’며 중립에 선 소비자들도 있었다.
BMW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파격을 저지른 걸까. 이 차량을 총괄 디자인한 독일 BMW 그룹 소속 임승모 디자이너가 직접 해명에 나섰다. BMW코리아는 3일 인천 영종도 BMW드라이빙센터에서 ‘4시리즈 신차발표회 겸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열었다. 현재 독일에 있는 임 디자이너는 사전 녹화 영상 형식으로 4시리즈 디자인에 대한 프레젠테이션과 Q&A 세션을 진행했다.
그는 “4시리즈는 3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쿠페 차량이면서 동시에 BMW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모델”이라며 “과감한 그릴 디자인으로 한 눈에 차별화되는 개성을 살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구형 4시리즈의 디자인은 3시리즈 세단과 상당히 닮았는데, 이번에는 뚜렷한 차별점을 뒀다는 것이다.
임 디자이너는 “사실 논란이 될 것은 예상했던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수평형 그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수직형 그릴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익숙함을 살짝 비틀어, 신선함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BMW 디자이너라면 브랜드의 상징인 좌우대칭형 그릴(BMW는 인체의 신장을 닮았다는 데서 ‘키드니 그릴’이라고 부른다.)을 쓰지 않을 수 없는데, 어차피 써야한다면 부담이 되더라도 파격적 변화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는 “디자인이 익숙한 것만 하면서 안주하는 게 더 위험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신형 4시리즈 외관의 측면·후면은 부담스러운 전면 디자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처리돼 있다. 측면 캐릭터 라인(차체 옆면 문을 가로지르는 굴곡)도 한 줄이고, 후면부도 비교적 단순하다. 임 디자이너는 “선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대신 볼륨을 강조했다”며 “차체의 비례를 살리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BMW는 1930년대 BMW 328, 1970년대 BMW 3.0 CSi 등 유명 클래식카에서 버티컬 그릴을 쓴 적이 있다. 그는 “BMW 디자인팀에선 오래전부터 버티컬 그릴에 대해 (어떻게 살릴까) 고민해 왔다”며 “디자인적 유산을 살리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오랜 시간 디자인적 신선함을 유지시켜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버티컬 그릴은 크기 자체도 상당히 크다. ‘크기에 압도될만큼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임 디자이너는 “그릴은 외부 공기를 흡입하는 본래 목적 외에도, 카메라·레이더·센서 등 다양한 부품이 장착되는 공간이라 커질수록 부품을 통합하기 유리하다”며 “디자인 적으로도 검정색 그릴이 차체 컬러와 대비되면서 인상을 강력하게 꾸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형 M3·M4 같은 고성능 모델, 전기차 iX·i4에도 유사한 버티컬 그릴이 적용될 예정이다. 버티컬 그릴이 대세가 되는 걸까. BMW는 좋아하지만, 버티컬 그릴은 원치 않는 소비자라면 걱정이 될 수도 있다. 임 디자이너는 “버티컬 그릴이 모든 차량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각 차종에 어울리는 최적화된 그릴이 각각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