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은 온라인 판매를 할 수 없다. 볼보·다임러·BMW 등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작년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비대면 온라인 판매’를 확대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테슬라가 지난해 온라인 판매로만 전기차 1만여 대를 팔았지만 현대차는 불가능하다. 판매직 노조가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면 일자리가 불안정해진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엔 6500명의 판매직 조합원이 소속돼 있다. 온라인 판매를 강행하면 이들이 들고 일어나 생산 라인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가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 사업체’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다양한 혁신을 추진했지만, 판매 방식은 수십년째 같은 방식인 이유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뉴시스

◇현대차 최고 갑은 노조

생산 현장에서 절대적인 입김을 행사하는 노조 때문에 현대차는 국내외 다른 기업에서는 볼 수 없는 황당한 풍경이 많다. 이를테면 외부인이 현대차 공장을 견학하려면 노조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언론 취재는 극도로 꺼려 한다. ‘직원의 초상권’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이 근무하는 장면을 외부에 노출하기 싫어서다. 사전 허가를 받았더라도 막상 현장에선 ‘왜 왔느냐’며 시비가 붙기 일쑤다.

2019년 12월 벌어진 ‘와이파이 사건’은 현대차 노조의 행태를 여실히 드러낸다. 현대차 울산 공장에선 2019년까지만 해도 직원들에게 범용 와이파이가 무상 제공됐다. 근무자들은 이 와이파이를 활용, 근무 중 틈틈이 영화나 유튜브 등을 시청해왔다. ‘생산성 하락’ 우려가 커지면서 회사가 와이파이를 차단하자, 노조가 특근을 거부하며 들고 일어났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선 공장 근무자의 휴대폰 사용이 금지되는 게 당연한 일”이라며 “동영상 보면서 일하는 공장은 울산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와이파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귀족 노조’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무상 와이파이가 차단됐다.

◇특정 차종 생산 늘릴 때도 노조 허락 받아야

현대차는 요즘 인기를 끄는 고급 세단 G80의 판매가 급증해도 회사 마음대로 생산량을 늘릴 수 없다. 판매가 부진한 쏘나타 생산 라인을 축소하고 G80 생산량을 늘리려면 노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현대차는 1996년 아산공장 이후 25년간 국내에는 공장 증설을 하지 않고 있다.

생산 현장에서 절대적인 입김을 행사하는 노조 때문에 현대차는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결국 손해를 보는 일도 빈번했다. 지난 2017년 인기가 높던 소형 SUV ‘코나’는 증산 과정에서 노사 협의가 결렬돼 파업으로 이어졌다. 현대차는 ‘공장 창문 설치’ 등 노조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나서야 증산에 합의했다.

일감을 나누는 협의는 때로는 밥그릇을 둘러싼 ‘노노(勞勞) 갈등’으로도 번진다. 2019년 출고 대기에만 1년 가까이 걸릴 정도로 수요가 폭발했던 대형 SUV ‘팰리세이드’ 생산량을 늘리는 과정에서 기존에 팰리세이드를 생산해왔던 울산 4공장 노조가 ‘다른 공장에 일감을 나눠주면 특근이 줄어 소득이 감소한다’며 반발했다. 팰리세이드를 기다리던 고객 2만여 명이 계약을 취소하는 등 문제가 커지자, 결국 울산 4공장의 일감을 최대한 보장하는 조건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미래 시장에 대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 폴크스바겐·BMW·GM 등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선제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40% 가까이 감소하는 전기차 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이다. 반면 현대차는 최근 수년간 도급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서 오히려 생산직 수가 늘어났다. 현대차는 노조의 반발을 우려해 2019년 이후 신입 생산직 채용을 전면 중단하고 정년 퇴직을 통한 자연 감소를 통해 인력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다소 황당한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