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사무연구 노조’ 설립을 주도하는 이들은 현대차그룹 전 계열사의 사무직·연구직 직원들로 대부분 8년 차 이하 매니저급(사원·대리)이다. 이들 MZ세대는 과거부터 누적돼온 현대차 내 고질적인 문제들을 거침없이 지적하며 사무연구직 노조 설립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회사 경영진뿐 아니라 기존 금속노조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그동안 없었던 제3의 세력을 형성하는 모습이다.
◇'갓술'이 뭐길래… 근태 지적하니 “현장 탄압”
현대차 직원들 사이에는 최근 ‘갓술’이라는 표현이 오르내리고 있다. ‘갓’(God·신)은 ‘최고'를 뜻하는 요즘 인터넷 은어로, 현대차에선 ‘기술직’(생산직과 연구소 내 일부 기술직)이 최고의 지위를 누린다는 의미다. 최근 현대차 직원이 사내 익명 게시판에 올린 한 그림에는 정의선 회장 위에 올라 앉은 존재로 등장했다. 한 현대차 연구직은 본지에 “일부 권위적인 고연차 기술직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도 부탁을 해야만 겨우 해준다”고 말했다.
노조 설립을 위해 3000여 명이 모인 카카오 채팅방에서도 ‘갓술’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한 현대차 책임매니저는 “아침에 나갔던 사람이 점심 이후 현장에 복귀하기에 어디 갔었냐고 물으니 ‘사찰하냐, 현장 탄압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커피 마시고 놀고 있으면서 ‘업무 얘기했다’고 한다”면서 “근태가 엉망인 직원을 징계하려고 하면 대자보 붙인다”고 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의 한 직원은 “(노조) 대의원들이 와서 큰소리칠 때마다 치가 떨린다”며 “무슨 1980년대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도 당해서 이제 ‘투쟁’이라는 말만 봐도 토가 나온다. 다른 말 쓰자”는 발언도 나왔다. 또 다른 직원은 “현장직과 같은 노조라는 프레임에 갇혀 욕 먹고, 조롱거리 되는 상황이 고통스러웠다”며 “별도 조직을 만들어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지금 노조는 정년 연장만 주야장천 외친다”는 발언도 나왔다. 한 기아 직원은 “‘(기존) 노조 덕에 이거라도 받는다' ‘노조 덕에 고용 안정'이라는 프레임을 깨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현대차 매니저는 “인사 고과에 목숨 거는 삼성전자는 근무 강도가 세긴 하다”는 글에 “차라리 (성과 보상이 확실한) 삼성전자를 가겠다”는 답글을 달았다.
◇”실질 임금 줄어… 인재 대우 맞나”
이번 MZ세대의 반란은 당초 ‘성과급 문제’가 발단이었다. 현대차는 사업부나 직군별로 성과급에 차등을 두지 않아 연구·사무직도 생산직과 똑같은 성과급을 받는다. 작년엔 지난 10년간 최저치인 ‘기본급 150%+120만원’으로 타결되자 불만이 폭발했다.
MZ세대는 노조 설립을 추진하며 성과급 문제뿐 아니라, 회사의 기본 처우와 경영진의 실책, 조직 문화 등 회사 경영 전반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 현대차 연구원은 카카오톡 채팅방에 “4년 차 원천소득이 2년 차 때랑 같다”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직원은 “월 실수령액 200만원 후반대”라며 “‘저가형 신입'으로 비용 절감한다”고 했다.
회사가 이익이 줄어 성과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하는 데 대해서도 MZ세대는 “IT 기업들은 영업이익 1조원도 안 된다”며 “매년 수조원씩 이익 내는 회사가 이럴 수 있느냐”고 반박한다.
이들은 회사의 경영 전략도 비판적 시각으로 본다. 한 매니저는 “한전 땅 사느라고 SUV, 전기차, 자율주행 등 전략이 늦었다”며 “그걸 만회하려고 밤낮으로 연구해서 신차 개발한 사람들이 바로 사무직 연구직 사원들”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 2014년 10조원을 들여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매입한 바 있다.
MZ세대의 목소리 중에는 다소 거친 표현으로 회사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발언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사무 노조가 일 안 하는 매니저·책임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 돼선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현대차 입장에선 기존 ‘강성 노조’와 새로 만들어질 ‘신세대 노조’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사측 관계자는 “직원들 눈높이에 맞는, 공정한 성과 보상을 위한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