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이 먼 얘기라고요? 곧 모든 지역에서 무인 자율주행이 가능할 겁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자동차 전장부품사 앱티브와 합작 설립한 자율주행 기술 기업 ‘모셔널’을 이끌고 있는 칼 이아그넴마(Iagnemma) CEO는 11일 본지 서면 인터뷰에서 “완전자율주행의 전 단계인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해 안전성도 입증해냈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율주행 기술은 레벨 0~5단계로 나뉜다. 레벨 4는 웬만한 위급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고 차가 알아서 주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사실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는 계속 늦춰지고 있다. 최근엔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구글 자회사 웨이모의 최고경영자(CEO) 존 크래프칙이 돌연 사임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자율주행은 아직 먼 미래의 일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아그넴마 CEO는 그러나 “자율주행 시스템이 인간보다 운전을 더 잘하게 되는 날이 머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아그넴마 CEO는 미국 미시간대·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로봇·자율주행차 분야 전문가로, 2013년 자율주행 스타트업 ‘누토노미’를 창업했고, 이후 앱티브에 합류했다가 작년 모셔널 대표로 선임됐다. 국내 언론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그룹은 모셔널 설립에 20억달러(약 2조3000억원)를 투자했다.
◇2023년부터 미국 주요 도시에서 로보택시
이아그넴마 CEO는 “2023년부터 차량 공유 업체 리프트와 제휴해 미국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로보 택시 사업을 시작한다”며 “로보택시 사업으로 짧은 시간 내 방대한 데이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시내 도로 주행 데이터 축적으로 AI(인공지능)가 보행자·자전거 등 교통 변수에 대응을 더 잘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자율주행을 현실화하려면 실제 주행거리가 가장 중요하다. 데이터가 많아야 인공지능 시스템이 스스로 학습해 기술을 고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율주행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느냐의 싸움이다.
웨이모는 10년 전부터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 총 2000만마일(3200만㎞)의 실험 거리를 축적했다. 그런데 테슬라는 5년 만에 51억마일(82억㎞)을 달성했다. 구글은 연구용 차량을 직접 몰아 데이터를 축적했지만, 테슬라는 지금까지 판매된 전기차 100만대가 전 세계를 달리며 대신 데이터를 쌓아줬다.
모셔널도 테슬라 방식을 따른다. 지금까지 쌓은 데이터는 150만마일(약 240만㎞)에 불과하지만, 로보택시 사업으로 금세 충분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아그넴마 CEO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차가 스스로 학습해, 다른 차량이나 보행자의 미래 위치를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셔널은 지난해 11월 네바다주 정부로부터 무인 자율주행 테스트 허가를 받았다. 시험 주행이 누적되면, 2023년 일부 지역에서 무인 로보택시 사업을 허가 받을 가능성이 높다.
◇양산차 가격 문제, 현대차 합작으로 해결
이아그넴마 CEO는 “글로벌 제조사인 현대차와의 전략적 협업 덕분에 고도의 안전성과 신뢰성은 물론이고 경제성까지 확보한 무인 자율주행차를 대규모로 양산할 수 있다”며 “자율주행 업계 내에선 흔치 않은 경쟁 우위”라고 밝혔다.
모셔널도 과거 앱티브 시절엔 구글처럼 크라이슬러 미니밴, BMW 세단 등 기존 차를 개조해서 썼다. 하지만 지금은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를 무인 자율주행이 가능하도록 현대차와 공동 개발 중이다. 모셔널은 이 아이오닉5를 로보택시 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다.
자율주행차의 또 다른 걸림돌인 가격 문제도 현대차와 협력 모델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아그넴마 CEO는 “자동차 제조 측면에선 현대차의 노련함이,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앱티브의 전문성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자율주행 전반에서 경제성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차체에 센서와 인공 신경망을 내장해 부품 수를 줄이고 대량생산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이경수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누가 먼저 센서 등 각종 핵심 기술 성능은 고도화하면서 양산차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느냐에 자율주행차 시장의 승패가 달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