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동차 기업 푸조가 소형차 308모델에 기본 적용해 오던 디지털 계기판을 빼고, 눈금과 바늘이 달린 구형 아날로그식 계기판을 넣기로 최근 결정했다. 디지털 계기판에는 차량용 반도체가 꼭 들어가야 하는데, 반도체 공급난이 장기화하자 이 편의사양을 포기한 것이다. 푸조는 아날로그식 계기판을 다는 대신 차 값을 400유로(약 54만원) 할인해 주기로 했다. 푸조 측은 “디지털 계기판에 들어가던 반도체 물량을 필수적인 안전·성능 관련 부품으로 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푸조의 소형차 308 모델의 계기판이 디지털 방식(위)에서 구형 아날로그식(아래)으로 되돌아간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디지털 계기판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푸조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심화하면서 자동차 업계에 ‘반도체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긴급 처방을 실행하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최근 8기통 5.3L 대형 엔진을 장착한 SUV(타호)와 픽업트럭(실버라도·유콘)에 당분간 엔진 출력 조절장치를 달지 않기로 했다. 이 장치는 평소 주행 때 출력을 절반만 사용해 연료 사용량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데,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반도체 수급 문제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자 옵션(선택사항)이던 엔진 출력 조절장치를 아예 없애 버리기로 했다.

이런 궁여지책도 마련하기 어려운 완성차 회사는 감산을 하고 있다. 포드·도요타 등 생산량이 많은 대중 브랜드는 물론, 메르세데스-벤츠, 재규어랜드로버 등 고급차도 최근 생산 라인 가동을 멈추고 있다. 폴크스바겐그룹의 자동차 브랜드인 세아트는 반도체 부품 수급에 따라 생산 차종을 결정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달 중순 현대차·한국GM·쌍용차가 각각 반도체 부족으로 공장 가동을 멈췄고, 다음 달엔 기아도 가동 중단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4월까진 반도체 재고 물량으로 버텼지만 이젠 거의 바닥난 상황”이라며 “반도체 수급난은 빨라도 3분기는 돼야 조금씩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