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미국 자동차 노조(UAW) 소속 조합원들이 GM 디트로이트 햄트랙 공장 앞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다. UAW는 당시 GM의 전기차 전환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에 반대하며 40일간 파업을 벌였지만 공장 폐쇄를 막을 순 없었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은 다음 달 미국 일리노이주 공장에서 전기 픽업트럭·전기 SUV 생산을 시작한다. 리비안은 2017년 일본 미쓰비시로부터 이 공장을 인수했다. 미쓰비시 시절 공장에선 4000여명의 직원이 근무했지만, 리비안은 2500명만 고용할 계획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적어 생산에 필요한 인력도 줄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곳은 미국 자동차 노조(UAW)이다. 전기차 시대의 인력 감소는 UAW 입장에선 조합원 수 감소와 영향력 축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미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차에 있지만 UAW의 미래는 아닐 수도 있다”며 “UAW가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영향력을 잃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1979년 150만명이던 UAW 조합원 수는 현재 40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UAW 자체 조사에 따르면 조합원 수는 곧 36만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UAW의 몰락은 시대 흐름에 따른 불가피한 변화”라며 “한국 자동차 노조도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난에도 파업, 몰락 자초한 UAW

UAW 몰락은 2000년대 후반 금융 위기 때부터 가속화됐다. GM은 2000년대 들어 신차 판매 부진, 높은 인건비와 낮은 생산성 문제로 경영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UAW는 2007년 임단협 교섭 때 GM에 ‘고용 안정’ 등을 요구하며 48시간 파업을 벌였다. 산별 노조인 UAW는 임단협 때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3사 중 가장 먼저 교섭할 업체를 골라서 협상을 하는데, 1위 업체인 GM을 지목한 것이다. 이틀 파업으로 2만여대 생산 손실을 본 GM은 경영난 속에서도 노조의 요구를 수용했고, 포드와 크라이슬러도 비슷한 수준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그해 GM은 387억달러(약 44조원)의 적자를 냈다.

막대한 비용 부담에 시달리던 GM은 2008년 금융 위기를 견뎌낼 여력이 없었다. UAW는 GM 파산 이후 근로자들의 의료·복지 혜택 대다수를 포기했고, 생산직 근로자 12%(7500여명) 해고에도 동의해야만 했다. ‘회사가 없으면 노조도 없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UAW는 이후 회사와 상생하는 방향으로 협상에 임해왔지만, 최근 UAW 전·현직 위원장을 포함한 집행부가 150만달러(약 17억원)의 노조 기금을 유용해 호화 리조트에 투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근로자들의 신뢰마저 잃어버렸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UAW의 몰락은 UAW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며 “신뢰를 잃은 UAW는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전기차 전환에 존속 위기 내몰린 UAW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도 UAW에는 위기 요인이다. GM은 2018년 전기차 전환을 위해 북미 5개 공장을 폐쇄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UAW는 이듬해 “공장 폐쇄는 안 된다”며 40일간 파업을 벌였지만, 결국 회사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미 UAW의 영향력이 줄어든 데다 ‘제때 전기차로 전환하지 않으면 회사가 통째로 없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노조 내부에서도 번진 탓이다.

현대차·폴크스바겐·BMW 등 외국계 완성차 업계는 물론, 테슬라·리비안 등 신생 전기차 업체 직원들도 UAW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2017년 UAW는 테슬라 캘리포니아주 공장 직원 1만명을 포섭하려 했지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노조 설립을 주도한 인물을 즉각 해고하면서 UAW의 접근을 원천 차단했다. 해당 근로자는 불법 해고를 인정받고 복직했지만, 테슬라는 여전히 무노조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게다가 배터리 등 전기차 부품 업계도 UAW를 외면하고 있다. 미국 내 배터리 공장을 가진 업체는 LG에너지솔루션·파나소닉 등 외국계인데다, 굳이 자동차 노조에 가입할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UAW는 “노조에 힘을 싣겠다”고 약속한 바이든 행정부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정부는 전기차 산업 육성을 내걸었는데, 이를 위해선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이를 잘 알고 있는 바이든 입장에선 무작정 UAW를 편들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