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제2의 테슬라’를 꿈꾸며 미 증시에 상장한 전기 픽업트럭 스타트업 로즈타운모터스가 잇단 악재에 휘청거리고 있다. 올 1월엔 시제품이 주행 테스트 시작 10분 만에 불이 나 차량이 전소됐고, 지난달엔 멕시코에서 열린 오프로드 경주에 참여했다가 초반 중도 포기를 선언했다. 배터리 소진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주행 중 차가 멈출 가능성이 커지자 아예 기권한 것이다. 2018년 설립한 로즈타운모터스는 스팩(SPAC)을 통해 나스닥에 우회 상장했다. 그러나 회사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작년 9월 30달러를 넘겼던 주가는 현재 9.6달러까지 곤두박질쳤고, 시가총액은 37억달러(약 4조원) 어치가 날아갔다.

로즈타운모터스 외에도 카누·피스커 등 스팩을 통해 상장한 전기차 스타트업의 주가가 올 들어 폭락하고 있다. 양산 일정이 미뤄지고, 시제품 테스트 결과에서 미흡한 부분이 발견되면서다. ‘버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스팩으로 상장한 주요 전기차 스타트업을 조사한 결과, 스팩 상장 전기차 스타트업 5곳의 주가는 최근 1년 내 최고점 대비 적게는 60%, 많게는 80% 이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 픽업트럭 테스트 주행서 전소 - 지난 1월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로즈타운모터스가 개발한 전기 픽업트럭 시제품이 미시간주 도로에서 주행 테스트를 시작한 지 10분 만에 불이 나 전소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배터리팩 쪽에서 처음 발화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사고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 미시간주 파밍턴힐스 소방서

◇양산 계획은 미뤄지고, 선주문은 허구였고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로즈타운모터스가 올 9월 전기 픽업트럭을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준비가 거의 안 돼 있다’며 ‘구직 사이트에 요리사와 피트니스 코치 채용 공고를 올렸지만, 정작 트럭을 조립할 근로자 채용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최근에는 공매도 전문 투자사인 힌덴버그 리서치로부터 공격도 받았다. 로즈타운모터스는 그동안 10만대 이상의 선주문을 받았다고 알려왔는데, 힌덴버그 리서치는 “자체 조사한 결과 선주문은 구매 강제력이 없는 계약이며 일부는 아예 허구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진위 여부를 조사 중이다.

로즈타운모터스 외에도 스팩으로 상장한 기업 상당수가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 스포츠카 스타트업 루시드모터스는 올해 2000대 생산 계획을 밝혔지만, 실제로는 600대 생산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양산 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차량용 반도체 품귀까지 덮친 탓이다. 루시드모터스는 최근 영하의 기온에서 전기차 구동 실험을 했는데, “예열·시동·충전 모두 이상이 없었다”고만 밝히고 실제 주행거리 등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지 않아 비판받고 있다. 전기 승합차 스타트업 카누는 작년 말 나스닥 상장 이후 최고경영자·최고재무책임자 등이 잇따라 사임했다. SEC는 경영진 이탈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에 착수했다.

◇스팩 상장 전기차들, 주가 60~80% 폭락

이런 이유로 주가는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작년 말 25달러까지 올랐던 카누 주가는 현재 7.7달러로 반년도 안 돼 70% 급락했다. 작년 6월 94달러까지 치솟았던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 주가는 현재 12달러로 1년도 안 돼 87.3% 급락했다. 전기 SUV 업체 피스커는 지난 2월 32달러에서 현재 12.5달러로 석 달 만에 60% 넘게 빠졌다. 에릭 고든 미시간대 경영대 교수는 NYT 인터뷰에서 “스팩 방식으로 검증되지 않은 기업들이 너무 빨리 상장됐다”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GM·포드 등 전통 완성차 업체가 완성도가 높은 전기차를 선보이는 것도 전기차 스타트업에는 위협 요소다. GM의 허머EV, 포드의 F-150라이트닝 등 기존 업체의 전기차는 마감 품질, 양산 물량, 애프터 서비스 등 모든 영역에서 스타트업의 제품보다 우수한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김필수 전기차협회장(대림대 교수)은 “전통 완성차 업체가 수십년간 쌓은 품질·안전 노하우를 스타트업이 일순간 따라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섣부른 상장이 독이 돼서 돌아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팩(SPAC·기업 인수 목적 회사)

인수·합병(M&A)만을 위해 만들어진 페이퍼 컴퍼니. 투자자 자금을 모아 먼저 증시에 상장한 뒤 정해둔 기한(보통 2~3년) 안에 비상장 기업을 인수·합병한다. 정식 기업 공개(IPO)를 하기 어려운 신생 전기차 스타트업 상당수가 지난해 전기차 붐을 타고 스팩에 인수되는 방식으로 미 증시에 우회 상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