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기차 생산 시설 등 미국에 8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현대차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바로 노조였습니다. 현대차 노조는 이 투자 발표 직후 “노조와 상의 없이 대규모 해외 투자를 결정했다”며 반대 성명을 냈습니다. 노조는 이 문제를 26일부터 시작되는 올해 임금·단체 협상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삼겠다는 계획입니다.

현대차는 바이든 정부가 200조원(1740억달러)을 투자해 육성하려는 미국 전기차 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더욱이 바이든 정부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을 외치며 미국산 전기차 우대 정책을 펴고 있어 현지 생산은 불가피합니다. 회사는 신시장을 개척하겠다고 하는데, 노조는 어떤 근거로 이를 반대하는 것일까요.

바로 현대차 노사가 맺은 희한한 단체협약 때문입니다. 현대차 단체협약 5장 42조 3항에는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려면 노사공동위원회의 심의·의결이 필요하다”고 돼있습니다. 해외에 전기차 공장을 새로 지으려면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또 42조 7항은 “회사는 (전기차 등) 차세대 차종을 국내 공장에 최대한 우선 배치·생산하며, 국내 공장 조합원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노사공동위에서 심의·의결한다”고 돼있습니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전기차·플라잉카·로보틱스 등 신사업이 미국에 집중되면 국내 양질의 일자리, 신규 일자리가 영향을 받는다”며 반대 근거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협약 내용은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선 찾기 힘든 내용입니다. 회사가 노조의 위세에 눌려 과도하게 양보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번 현대차의 미국 투자는 국내 물량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어서, 당장 국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자동차 업계 한 전문가는 “현대차는 2000년대 초반 해외 투자를 본격화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고, 늘어난 이익이 국내에 재투자되는 선순환이 이뤄져왔다”고 말합니다. 현대차 노조는 해마다 글로벌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성장 과실은 나누자고 하면서, 글로벌 투자는 반대하는 모습은 이율 배반적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