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 포드 본사에서 공개된 새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앞에선 짐 팔리 포드 CEO. F-150 라이트닝은 27일 예약 일주일 만에 7만대 주문을 달성하며, 포드의 전기차 미래를 여는 선봉장 역할을 맡았다. /AFP

미국 자동차 업체 포드가 26일(현지 시각) 투자자 초청 행사를 열고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매출 40%를 전기차로 달성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2025년까지 전기차 부문에 300억달러(약 33조5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포드는 지난 2월 전기차 사업에 220억달러 투자 계획을 밝혔는데, 석 달 만에 8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포드의 총 투자액은 미국 1위 자동차 회사인 GM의 투자액(270억달러)을 웃돈다.

1903년 창업 이후 120년 가까이 내연기관차 중심이었던 포드가 최첨단 전기차 업체로 변모하고 있다. 이 변신을 주도하는 인물은 작년 10월 포드의 11대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짐 팔리(Farley·59)다. 그는 이날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헨리 포드가 ‘모델T’를 양산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성장과 가치 창출의 기회”라고 자평했다.

◇정크본드 수모당했던 포드, 팔리 지도 하에 첨단 전기차 업체로

포드는 작년까지만 해도 미래가 불투명했다. 포드의 영업이익률은 2015년 7%를 달성한 이후 계속 내림세를 보이며, 2020년에는 2.2%까지 떨어졌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타격을 정통으로 받았던 작년 2분기에는 19억달러(약 2조3000억원) 적자를 내고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회사채가 투자 부적격 등급인 ‘정크본드’로 취급되는 수모도 당했다.

포드 가문은 회사를 반등시킬 구원투수로 팔리를 낙점했고, 팔리는 재임 반년여 만에 포드를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전기차 전환에 본격적으로 나선 포드는 4월에는 배터리 기술 내재화를 위한 개발센터 건립을 발표했다. 지난 20일엔 SK이노베이션과 손을 잡고 배터리 합작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포드는 유럽에도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팔리는 이날 ’2023년 영업이익률 8%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최근 공개한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이 예약 일주일 만에 7만대 주문을 달성하며 좋은 출발을 끊었다는 평가다.

팔리는 “포드의 경쟁자는 아마존·바이두·애플”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정보통신 기술 트렌드에 관심이 많다. 포드는 올해부터 테슬라 등에 적용된 원격 업데이트(OTA) 기능을 도입해, 2028년에는 3300만대의 차량에 커넥티드카(인터넷에 상시 연결된 차)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을 300명에서 4000명까지 늘렸다.

그의 전기차 전환 계획에 시장도 반응하고 있다. 전임 CEO였던 짐 해킷 재임 시절(2017년 5월~2020년 9월) 포드 주가는 39.7% 하락했다. 그러나 팔리가 선임된 뒤엔 6.75달러에서 13.90달러가 돼 2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어릴 적부터 자동차 전문가...”경쟁이 나를 재충전한다”

팔리는 그의 커리어 대부분(1990~2007년)을 일본 도요타에서 근무하며 일본식 효율 경영을 체득해 왔다. 고급 브랜드 렉서스 영업 총괄을 지냈고, 도요타의 하위 브랜드인 사이언(Scion)의 미국 시장 진출을 진두지휘했다. 2007년 포드에 합류한 뒤에는 글로벌 마케팅·세일즈 부문장, 고급 브랜드 링컨 총괄, 유럽 영업총괄,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을 지냈다. 그가 유럽 담당이었던 2016년 포드 유럽은 판매가 전년 대비 5% 증가했고, 유럽 소형트럭 점유율 1위(13.2%)를 달성했다.

팔리는 어릴 적부터 ‘자동차 전문가’였다. 포드 초창기 헨리 포드와 함께 모델T를 만들던 직원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팔리는 여름방학이면 할아버지와 함께 포드 공장을 견학했다. 열네 살 때는 이웃집 자동차를 수리해줘 번 돈으로 1966년식 머스탱을 중고차로 사기도 했다. 그의 취미는 자동차 경주다. 영화 ‘포드 v 페라리’에 등장했던 포드의 경주용 차 GT40을 직접 몰고 클래식 자동차 경주 대회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팔리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레이싱 경주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게 다 있다”며 “차를 타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나면 스스로 재충전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