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중국 베이징 1공장의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베이징1공장은 최근 수년간 이어진 중국 내 판매 부진에 따라 2019년 4월 가동을 중단했다. 현대차는 2년여간 유휴 시설이었던 공장을 매각하고 본격적인 ‘경영 효율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베이징 1공장은 현대차가 해외에 지은 첫 생산 기지로, 2010년대 중반까지 현대차의 중국 시장 성공 가도를 이끌었던 상징적인 공장이다. 베이징1공장은 2002년 12월 양산 체계를 갖추고 EF쏘나타를 중국에 출시했다. 2004년 1월에는 아반떼XD(중국 판매 이름은 엘란트라)까지 선보였는데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일본·유럽·미국 브랜드 차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베이징1공장은 2004년 5월 누적 10만대, 2008년 2월엔 누적 100만대 생산을 돌파했다. 중국 내 모든 자동차 회사 중 가장 빨리 성장한 기록이었다. 이에 ‘현대 속도’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현대차는 베이징1공장의 성공에 힘입어 2008년 베이징2공장을, 2012년에는 베이징3공장을 준공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생산 능력을 줄일 때, 현대차·기아는 오히려 중국 내 생산능력을 확충해갔다. 현대차는 중국에 5개의 승용차 공장과 1개의 상용차 공장을, 기아는 3개의 승용차 공장을 보유했다. 연간 생산능력은 270만대까지 늘어났다. 중국이 현대차그룹의 제1 해외 생산기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2016년을 끝으로 현대차의 중국 성장은 끝이 났다. 2016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로 인한 중국 내 반한(反韓) 감정이 극대화되면서 판매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2016년 중국 내 현대차·기아 합산 판매량은 179만여 대로 중국 진출 후 최대치를 기록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작년엔 절반도 안 되는 66만여대에 그쳤다. 시장 점유율도 이 기간 8.1%에서 3.5%로 떨어졌다. 지난해 현대차·기아는 중국에서만 2조원 가까운 적자를 봤다.
사드 문제가 발단이 됐지만, 제품 전략을 따져봐도 성공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현대차의 경쟁력은 경쟁 브랜드 대비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있었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 이후 중국 현지 자동차 업체가 현대차보다 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물량 공세를 펼쳤다. 고급차 시장은 유럽 브랜드가 꽉 잡고 있었다. 중간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가 됐고, 좀처럼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현대차는 2019년부터 중국 사업 체질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중국 자동차 시장 규모는 연간 2500만대로, 단일 국가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중국 시장은 자동차 업체라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앞서 작년 세단 위주의 차종을 SUV로 교체했고, 딜러 재고를 6만대 이상 줄여 올해 반등을 위한 기반을 구축했다. 올해 들어서는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중국에 런칭했고, 현대차 넥쏘와 아이오닉5, 기아 EV6, 제네시스 G80 전기차 버전 등 친환경차도 선보였다. 중국 내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영역을 중심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개선하는 것이다.
현대차는 중국 사업의 상징과도 같았던 베이징1공장 매각을 통해, 전환점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장 공장 매각을 통해 현금을 벌어오고, 고정 비용 지출을 줄이고 효율성은 높일 수 있다. 비대해진 중국 사업을 재편하기 위해서는 옛 영광은 잊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베이징1공장의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는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샹’으로 알려졌다. 리샹은 니오·샤오펑과 함께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3총사’로 불리는 업체로 현재 미 나스닥 증시에 상장돼 있다. 2015년 창업했고, 2019년 말 일종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 SUV인 ‘리샹 원’을 처음 출시했다. 주행거리가 700㎞에 달하며 3열 좌석까지 활용하면 최대 6~7명까지 탈 수 있다. 현재 월간 판매량은 5000여대 수준이지만, 판매 성장세가 가파르다. 현재 연간 10만대 수준의 생산량을 2025년 160만대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