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정년연장 세대갈등

현대차·기아·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3사 노조가 “노동자 정년을 연장해달라”는 국회 청원을 올리자, 여기에 반발한 MZ세대 직원이 “정년 연장에 반대한다”는 글을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렸다. “평균 수명 연장과 빠른 고령화로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노조 주장에, 젊은 직원들은 “정년 연장하면 그만큼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반박했다. 전기차 대전환을 맞아 생산직 일자리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완성차 업계에서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가 일자리를 두고 다투는 세대 갈등의 뇌관으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 14일 이상수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민주노총 산하 완성차 3사 노조를 대표해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을 촉구하는 청원을 국회 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현재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 시기에 맞춰 최대 65세로 연장해달라'는 것으로, 사측에 정년 연장을 요구해왔던 노조가 국회를 향해 이를 아예 법제화해 달라고 나선 것이다. 노조는 “한창 활동할 나이에 퇴직을 하면 고령자들은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저출산 문제로 향후 노동력이 부족해질 수 있다”며 “정년 연장으로 노동자들은 안정적 노후를 유지할 수 있고 기업은 숙련된 노동력으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완성차 3사 노조가 정년 연장을 위한 법 개정을 촉구하자, MZ세대 직원들이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반발하며 세대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생산직들이 차를 조립하는 모습. /현대차

다음 날인 15일 청와대 게시판에 ‘정년 연장 반대’ 청원이 올라왔다. ‘완성차 3사 중 한 곳에서 일하는 MZ세대 현장직’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친환경차로 바뀌는 기로에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 공급이 필요한데 노조는 변화와 (그에 따른) 기술을 준비하지 않은 채 본인들의 존속을 위해 숙련된 노동자라는 말로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 연장을 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년 연장은 기업이 유능한 인재를 고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청년 실업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6일 현재 노조의 국회 청원은 1만여명이, MZ세대 직원의 청와대 청원에는 1300여명이 동의를 표시했다.

김용진 서강대 교수는 “정년 연장은 고령화 시대에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과제지만 일자리가 감소하는 자동차 업계에선 세대 간 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고용 유연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과 청년에 부담을 늘리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산직 많은 조선·철강·油化 대기업도 ‘정년연장 회오리’

정년 연장은 노동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현대차·기아·한국GM 등 자동차 노조 외에도 조선 중공업, 석유화학, 철강처럼 생산직 비율이 높은 대기업 노조도 수년 전부터 정년 연장을 요구해왔고, 한국노총은 올해 정년 연장을 공론화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을 받는 시기가 출생 연도별로 63~65세이니, 60세에 정년퇴직하면 생기는 ‘월급 공백’을 메워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요구에 경영계는 물론, MZ세대 직원들의 반감도 상당하다. 생산직의 정년 연장은 그만큼 청년 일자리 감소와 자신들이 받아야 할 성과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년 연장' VS ‘성과급·인재 확보’

특히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시대를 맞아 생산직은 줄이고, 미래차 연구 인력은 늘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5일 정년 연장 반대 청원을 올린 MZ세대 완성차 업계 직원은 “과거 성장기에 고생하며 산업을 성장시킨 선배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면서도 “현장에서 직접 근무하며 느낀 바로, 노조가 말하는 숙련된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도 많아 세대 갈등과 대외적 이미지 손실, 성과 손실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노조의 그늘에 가린 인력 적치”라며 “기업은 새로운 인재를 양성해 변화에 살아남아야 양질 일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체의 사내 익명 게시판에는 “2030세대는 연금 구경도 못 하는데, 놀부 심보 아니냐” “기업이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적당히 해야지” “양심도 없다”는 등의 거친 글도 다수 올라왔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부품 수가 37% 적어, 기존 생산 인력 40%는 불필요하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이유다. GM은 2018년 북미 공장 5곳을 폐쇄하는 한편, 사무·연구직 신입 인재를 대거 채용했다. 메리 바라 GM 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사무·연구직 직원들의 40%가 5년 차 미만 직원”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반면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못해 ‘정년퇴직’이라는 자연 감소만을 기다리는 실정이다. 공장 자동화에 맞춰 디지털 공정을 이해하는 신규 인력도 필요하지만, 현대차·기아는 2019년 이후 신입 생산직을 뽑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총도 ‘정년 연장’ 공론화

조선 중공업 업계에서도 정년 연장 요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삼성중공업 노동자 협의회는 65세로 정년 연장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고, 현대미포조선 노조는 지난해 임단협에서 요구했던 정년 연장(62세)을 올해도 요구할 계획이다. 지난 15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광주지역본부 간담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정년 연장을 공식 의제로 올려 단계적으로 공론화할 예정”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은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법정 정년을 맞추는 방안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경제 단체들은 정년 연장을 위해서는 고용 유연성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김용춘 한경연 고용정책팀장은 “일본은 인구 감소로 일손이 부족하니 노사가 모두 원해서 정년 연장을 하고 있다”면서 “반면 청년층 체감 실업률이 24.3%에 달하는 한국에선 청년들의 취업 문이 더욱 좁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현재 구직자 1명당 남아있는 일자리 수가 일본은 1.18, 한국은 0.45다.

정년 연장의 부작용을 줄일 유일한 대안은 임금피크제이지만 이 또한 도입하기 쉽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 노조는 정년 연장 도입과 임금피크제 폐지를 함께 요구하고 있다”면서 “정년을 늘리면서 계속 고임금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기업은 없다”고 말했다. 이항구 자동차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호봉이 아닌 성과에 따른 연봉 지급, 고용 유연성 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년 연장은 기업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