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최고 수준의 전기차 경주대회 ‘포뮬러E’가 내년 8월 13~1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일대에서 열린다. 원래는 작년 5월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취소됐고, 이후 포뮬러E코리아와 국제자동차연맹(FIA), 서울시 등이 협의를 거쳐 내년 개최하기로 새 일정을 잡은 것이다. 성공 개최된다면 앞서 2010~2013년 전남 영암에서 열렸던 F1(포뮬러 원) 이후 국내에서 열리는 두 번째 세계적 규모의 레이싱 대회가 된다. 공식 명칭은 ‘ABB FIA 포뮬러E 월드 챔피언십’이다.
F1이 내연기관차 최고의 레이싱 대회라면, 포뮬러E는 순수 전기차 경주대회다. 두 대회 모두 FIA가 주관한다. 포뮬러E는 2014년 중국에서 처음 시작한 이후, 대회 규모를 키워가면서 글로벌 대회로 거듭났다. 보통 연말에 시작해 이듬해 여름까지 13~15번의 경주를 세계 각지에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현재 진행 중인 2020~2021시즌은 현재까지 7개 라운드를 치렀고, 올 8월 중순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15라운드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내년 시즌도 비슷한 일정이다. 서울 대회는 2021~2022시즌의 최종전으로, 우승팀을 가릴 결승전 역할을 하게 된다.
◇배터리 전략을 잘세워야 우승할 수 있다
F1은 대회를 위해 마련된 전용 서킷에서 치르지만, 포뮬러E는 도심 내 기존 도로의 교통을 통제해 임시 트랙으로 만들어서 쓴다. 전기차 특성상 소음·공해가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홍콩·파리·베를린 등 도심 한가운데서 열리기 때문에 더 많은 팬을 유치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F1에는 없는 90도 직각 코너, 180도 유턴 코너도 설치되기 때문에 드라이버들의 코너링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서울 대회의 임시 트랙은 잠실종합운동장 일대다. 2년 전에는 잠실학생체육관 앞 도로에서 출발, 야구장과 주경기장, 실내수영장 주변 도로를 도는 코스로 정해졌었다. 내년 대회 트랙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대회에 쓰이는 차량은 기본적으로 FIA가 정한 경주차 ‘Gen2 EVO’ 모델만 쓸 수 있다. 차량의 최대 출력은 250kW, 최고 속력은 시속 280㎞이다. 차체와 배터리, 타이어 등은 FIA가 정한 제품을 써야 한다. 다만 모터나 나머지 부품은 규정 안에서 팀(제조사)이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다. 드라이버의 몸무게를 포함, 차량 중량은 최소 900㎏을 넘어야 한다. 이런 규정을 정해둔 것은 큰 배터리와 고출력 모터를 탑재하는 것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포뮬러E는 기본적으로 드라이버의 운전 실력을 겨루는 레이싱 대회다.
대회는 보통 토~일 주말을 활용해, 연습주행과 예선, 본선으로 나눠서 치른다. 본선은 45분간 진행되는데, 45분이 지나면 그 시점에서의 1위가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최후의 한 바퀴가 시작된다. 이후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서대로 최종 순위가 매겨진다.
경주 중에는 타이어를 교체하거나 배터리를 충전할 수 없다. 배터리 용량이 54kWh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무작정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보단 남아있는 배터리 용량을 상시 확인하고 속도를 낼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잘 구분하는 전략을 세워야 승리할 수 있다. 배터리 용량을 남겨두면 속도에서 손해를 보고, 배터리 용량을 마구 끌어쓰면 결승선을 통과할 수 없다.
차량의 최대 출력은 250kW지만 경주 중에는 200kW만 쓰도록 제한된다. 모든 드라이버는 일시적으로 출력을 25kW 더 높일 수 있는 ‘어택 모드’를 발동할 수 있다. 또 경기 전 사전 투표에서 표를 많이 받은 상위 5명에게는 5초간 25kW 출력을 추가로 더 높일 수 있는 ‘팬 부스트’ 특권을 준다. 200kW만 썼을 때보다 순간 가속력이 빨라지기 때문에 다른 드라이버를 추월할 기회가 되지만, 그만큼 배터리 잔량도 빠르게 줄기 때문에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자동차 제조사들의 전기차 기술 각축전
포뮬러 E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 이상으로 뛰어난 성능을 가졌다는 점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처음 기획된 대회다. 전기차 기술을 뽐낼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 제조업체가 많이 참여했다. 올 시즌엔 12개 팀(드라이버 24명)이 대회를 치르고 있는데, 그 중 8개 팀이 자동차 제조회사다. 아우디, BMW, DS, 재규어, 마힌드라, 메르세데스-벤츠, 닛산 등 전통 완성차 업체에, 중국의 신생 전기차 업체 니오까지 참가하고 있다.
현대차는 참가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WRC(월드랠리챔피언십), WTCR(월드투어링카레이싱), eTCR(전기투어링카레이싱) 등에만 참가한다. 이들 대회의 특징은 양산 차를 기반으로 개조한 차량으로 참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모터스포츠 참가의 의의를 고성능 주행 기술 개발에 두고 있다. 경주용 차 개조 과정에서 얻은 기술을 추후 양산 차에 적용하는 게 목표라는 것이다. 대회에서 정해둔 차량만 사용 가능하고, 참가팀이 차량 성능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은 포뮬러E는 현대차 입장에선 참가할 이유가 크지 않은 대회다. BMW·아우디도 올해 대회까지만 참가하고 내년 시즌(2021~2022)부터는 불참하기로 했는데, 현대차와 비슷한 이유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시즌 기준 포뮬러E 글로벌 시청자 수는 4억명으로, F1(6억명)을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 포뮬러E가 내년 국내 대회를 개최하면 전기차 대중화와 모터스포츠 문화 확산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대회 기간을 전후로 선수와 운영 인력 등 대회 관계자만 2000여명이 서울을 찾을 것으로 예측했다. 포뮬러E를 즐기기 위해 서울을 방문할 국·내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서울관광축제인 ‘서울 페스타 2022’를 개최해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글로벌 스타 방탄소년단(BTS)이 대회 홍보대사로 참여하고 있어, 다양한 문화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