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자동차의 핵심 기술인 ‘무인 자율주행차’가 투자금만 날리는 밑 빠진 독으로 변하고 있다. 화려한 청사진을 내걸고 개발에 뛰어들었던 업체들이 기술 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대규모 자금만 축내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 벤처캐피털(VC)과 부품 업체로부터 25억달러(약 2조8400억원)를 유치한 구글의 자율주행 기술 자회사 웨이모가 대표적이다. 작년 3월 32억달러(3조6400억원) 투자를 유치했던 이 회사는 단 1년여 만에 새 투자를 받아야 할 만큼 자금 소진이 빠른 것으로 전해졌다.
구글은 2009년 이후 웨이모에 최소 100억달러 이상 투자했지만, 웨이모는 작년에만 45억달러(약 5조원)의 적자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웨이모는 아직도 제한된 구역에서 시험 운행만 하는 처지다. 당초 2020년 자율주행 상용화를 내세웠지만 이제는 기약도 없다. 자동차 업계에선 ‘구글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에 받은 투자금도 ‘웨이모 직원 2400여명의 1년 급여로 다 쓰게 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분석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웨이모뿐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정보통신(IT) 업체 대다수가 무인 자율주행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GM의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는 지난 16일 50억달러(약 5조6700억원) 규모의 신용 대출을 확보, 자율주행 셔틀 개발 및 양산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작년 미국에 자율주행 기술 업체 모셔널을 합작 설립하는 데만 20억달러(약 2조2700억원)를 썼고, 이와 별개로 2025년까지 1조6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2025년까지 140억유로(약 18조8800억원)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이 어설픈 소액 투자로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금까지 글로벌 자동차·IT 업계가 자율주행에 쏟아부은 누적 투자액만 800억달러(약 91조원)에 달한다. 주요 업체들의 투자 계획을 종합하면 2025년까지 추가로 700억달러(약 80조원)가 더 들어갈 전망이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에선 ‘여전히 투자금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시험용 무인 자율주행차 1대를 만드는 데만 최소 3억~5억원 정도 든다”고 말했다. 현재 무인 자율주행차 600대를 보유한 웨이모는 이를 10만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단순 계산하면 차량 제조에만 최소 30조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자의 비싼 몸값도 한몫한다. FT는 ‘웨이모 개발자들한테는 연봉 100만달러도 결코 많은 돈이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기술은 안되고 규제도 한가득
막대한 투자에도 기술 개발 속도가 더딘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자율주행 인공지능(AI)의 완성도가 좀처럼 높아지지 않고 있다. 일반 도로를 안전하게 달리려면 다양한 도로 형태나 지형지물, 보행자·자전거의 돌발 움직임, 날씨에 따른 환경 변화 같은 다양한 변수에 모두 대응해야 하는데, 현재 수준의 AI로는 이 모든 변수를 실시간으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분 자율주행에 불과한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조차 교통사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스템과 규제도 기술 진전을 막는 장벽이다. 자율주행을 위해선 차량이 도로 교통망과 상시 연결된 상태여야 하는데, 지역별로 교통 전산망 체계가 모두 달라 통신 기술 개발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6일 미국 상원은 자율주행차 시험 운행의 규제 완화 등이 담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기로 했다. 자율주행 안전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섣불리 규제를 풀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악재들이 겹치며 테슬라·GM 등 자동차 업계가 약속했던 자율주행 상용화 시점은 당초 2020년에서 2025년쯤으로 늦춰졌고 앞으로 더 늦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WSJ는 ‘AI 기술의 획기적 진전 또는 전면적 도시 재설계 없이는 무인 자율주행차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