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 기업 폴크스바겐그룹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 중국에서 오랜 기간 군림해왔다. 매년 중국에서만 400만대 이상 팔아치우며, 시장점유율 20% 가까이를 쥐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폴크스바겐의 아성이 위협받고 있다. 폴크스바겐 중국 시장점유율은 올 상반기 16%대로 크게 줄었다. 판매량은 작년 코로나 기저 효과에 힘입어 늘어났지만, 성장률은 7.1%로 중국 전체 자동차 시장 성장률(+24.8%)에 한참 못 미쳤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성숙해지며 예전처럼 독일차에 대한 호의를 베풀지 않을뿐더러, 전기차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전기차 전환에 가장 앞장서는 나라다. 폴크스바겐은 야심차게 중국에 신형 전기차를 선보였지만, 테슬라나 중국 로컬 전기차 업체에 밀리며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판이 흔들리고 있는 전기차 대전환기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내연기관차도 부진한데, 전기차는 더 부진
코로나 대유행이 발생하기 전인 2019년 상반기 179만대를 팔았던 폴크스바겐은 올해 상반기 152만대 판매에 그쳤다. 판매 감소의 핵심 원인은 폴크스바겐이 중국 현지 생산하는 중형 세단 ‘파사트’가 2019년 말 중국 자동차보험협회의 비공식 충돌 테스트에서 최하점을 받아 차량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된 탓이다. 폴크스바겐은 즉시 ‘차에 보강재를 덧대 안전성을 높였다’고 밝혔지만, 시장 반응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파사트는 2019년 상반기 9만1400대 팔려 경쟁 모델인 도요타 캠리(8만5396대)를 앞섰지만, 올해 상반기엔 3만9668대에 그치며 캠리(9만1110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매출이 하락하자 수익성은 급락했다. 글로벌 투자업체 얼라이언스번스타인에 따르면, 중국 시장에서의 폴크스바겐 차량 한 대당 이익 규모는 2015년 1400~1500유로(200만원 안팎)에서 지난해 1000유로(약 135만원)로 떨어졌고, 올 2분기엔 800유로(약 107만원)까지 낮아졌다.
폴크스바겐은 중국 시장 트렌드에 맞춰 전기차를 돌파구로 삼았는데, 오히려 전기차가 판매 부진을 가속화하고 있다. 올 상반기 폴크스바겐의 중국 전기차 판매는 1만5472대로, 테슬라의 6월 한 달 판매량(2만8000대)보다 적었다. 중국에선 스마트폰 연결, 차량 내 결제 등 자동차 소프트웨어 편의성이 전기차의 중요한 구매 요인인데, 폴크스바겐의 첫 전기차 ID.3는 작년 소프트웨어 오류로 출시 자체가 지연됐을 정도로 이 분야 기술 발전이 더딘 편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훌륭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과 컴퓨터 프로그램 코드를 만드는 것은 아예 다른 일”이라며 “전기차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폴크스바겐이 간과했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선 아예 친환경차 판매 제로
폴크스바겐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중국 내 전기차 판매량을 늘려가며 ‘2050년 탄소 중립’ 계획을 성공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에서 한국은 외면받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국내엔 아직도 친환경차를 도입하지 않고 내연기관차 판매에만 집중하고 있다. 올 상반기 폴크스바겐 국내 자동차 판매는 전부 가솔린(2418대) 아니면 디젤(6334대)이었다. 전체 판매에서 디젤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72.4%로 주요 수입차 업체 중 독보적으로 높다. 폴크스바겐은 내년에야 전기 SUV 모델 ID.4를 국내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등 제한적인 친환경차라도 먼저 선보이는 다른 수입차 업체들과 다른 행보다. 폴크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전기차 대전환기이지만 내연기관도 당분간은 공존하는 것이 자명하다”며 “전기차 전환을 강력히 추진하는 동시에 내연기관을 더 친환경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국내 자동차 업계에선 ‘경영 여건상 당장 생산을 멈출 수 없는 디젤 모델을 한국에서 떨이 판매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폴크스바겐그룹은 2025년까지 전기차 전환에 350억유로(약 47조원)를 투자하는 등 대대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며 “하지만 폴크스바겐이 강점을 지니고 있는 캐시카우(현금창출원)를 단번에 접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