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기업 지리차와 프랑스 르노그룹이 친환경차를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고 9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르노가 중국에서 판매할 친환경차를 만드는 데 지리차가 기술을 제공하고, 지리차 산하의 링크앤코가 르노삼성이 한국 시장에 판매할 친환경차도 개발한다는 내용이다. 지리차가 르노 브랜드를 발판 삼아 한국 시장까지 진출한다는 것이다.
2010년 스웨덴 볼보를 인수한 뒤 급성장해온 중국 지리차가 유럽의 자동차 브랜드들을 지지대 삼아 해외로 도약하고 있다. 지리차는 2017년 런던의 상징인 ‘블랙캡’(런던택시컴퍼니)을 인수해 지난해 일본까지 진출했으며, 2018년 독일 다임러의 최대 주주에 올라 메르세데스-벤츠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볼보를 활용한 다양한 파생 브랜드를 내세워 중국차 이미지를 벗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군하고 있다.
◇볼보·벤츠의 1대 주주
지리차는 2010년 포드로부터 볼보 지분 100%를 18억달러(약 2조원)에 인수했다. 당시 리슈푸(58) 지리차 회장은 2009년 금융 위기로 벼랑 끝에 몰린 포드가 볼보를 매물로 내놓을 것을 예견하고 철저히 인수 준비를 했다고 한다. 지리차를 탐탁지 않아 했던 포드에 지리는 볼보의 지식재산권을 볼보에 두고, 볼보는 볼보가 경영한다(볼보 by 볼보)는 약속을 하고 인수에 성공했다. 이후 지리차는 5년간 12조원을 볼보에 쏟아부었다. 그 결과 볼보는 “가재의 딱딱한 등껍질처럼 단단한 차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던 창업자들의 정신이 부활한 ‘안전한 차’의 대표 브랜드로 부상했다.
지난 10여 년간 디자인과 성능이 향상된 9종의 신차를 내놓은 볼보는 요즘 없어서 못 파는 차가 됐다. 국내에서도 최소 6개월~1년을 대기해야 받을 수 있다. 볼보의 올 상반기 글로벌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한 38만대였는데, 이는 2009년 지리차 인수 직전 연간 판매량(33만대)보다 많은 것이다.
리슈푸 회장은 독일 벤츠까지 손을 뻗었다. 2018년 벤츠 브랜드를 소유한 다임러 지분 9.7%를 비밀리에 사들여 단숨에 1대 주주에 올랐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리슈푸 회장은 길거리 사진사부터 시작해 냉장고 부품업, 오토바이 사업 등을 거쳐 1994년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27년 만에 ‘자동차 역사 그 자체’로 불리는 벤츠를 손에 쥔 것이다. 다임러는 처음 지리차의 지분 매입에 우려스러운 시선을 보냈지만, 이내 고급 경차 브랜드 스마트 지분 50%를 지리차에 매각하는 등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스마트가 내년 출시할 소형 전기차 E-SUV도 지리차와 다임러가 공동 개발한다.
◇볼보 파생 브랜드로 글로벌 진출
지리차는 볼보를 활용한 다양한 파생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지리차와 볼보가 합작한 ‘링크앤코’와 ‘폴스타’가 대표적이다. 볼보의 지분을 100% 지리차가 소유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100% 지리차 소유 브랜드지만 지리차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볼보를 앞세우고 있다. 브랜드뿐 아니라 볼보의 기술력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링크앤코는 볼보 플랫폼과 엔진을 적용해 차를 만들고 있다. ‘링크앤코09′ 모델은 볼보 XC90과 거의 같은 차지만, 가격은 더 저렴하다. 폴스타는 스웨덴의 튜닝 업체였는데 2015년 지리차가 볼보를 통해 인수했다. 이후 지리차가 직접 지분을 투자해 고급 전기차 브랜드로 재출범시켰다. 폴스타는 한국에도 법인을 세워 신차 출시를 준비 중이며, 미국에선 테슬라와 대항하겠다며 내년 출시 목표로 전용 라인을 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차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지 스스로 너무 잘 아는 지리차는 볼보의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를 매우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다”며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M&A(인수합병)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지리차는 최근 볼보와 합병을 추진하다가 포기했다. 지리차가 볼보와 합병하면 볼보의 엔진, 플랫폼 등 지식재산권 전반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볼보의 브랜드 가치는 ‘중국차’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어느 쪽이 더 이득인지 철저히 계산기를 두드려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