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기아의 첫 전용 전기차 ‘EV6’를 타 봤다. 전기차답게 조용하면서도, 폭발적인 가속 성능이 돋보이는 차였다. 시승차는 EV6의 주행 성능을 조금 끌어올리고 외관 디자인을 가다듬은 사륜구동 ‘GT라인’ 모델이었다. 선루프와 메리디안 사운드 시스템, 빌트인 캠과 20인치 휠을 달아 가격이 6262만원으로 책정된 모델이다.
EV6는 외관 디자인이 독특하다. 같은 플랫폼을 쓴 현대차 아이오닉5가 굵은 선을 강조해 단단해 보이는 인상이었다면, EV6는 곡선의 유려함을 살린 쿠페형 SUV와 흡사한 느낌이다. 차가 그리 높아 보이진 않았지만, 막상 운전석에 앉아서 본 시야는 세단보다는 훨씬 트여 있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최대 장점은 실내 공간이다. 전기차 특성상 운전석과 조수석을 가로막는 턱이 없어 공간 활용성이 높다. 시동 버튼과 변속 다이얼 아래가 텅 비어 있어, 가벼운 소지품을 두기 좋았다. 휠베이스(앞뒤 바퀴 간 거리)는 2900㎜로, 대형 SUV 현대차 팰리세이드와 같다. 4인 가족이 타기에 충분한 실내공간을 확보했다. 뒷좌석을 접을 경우 수납공간은 최대 1300ℓ까지 늘어난다. 차박(차+숙박)은 가능은 하지만 아주 적합하진 않다. 차 높이(1550㎜)가 그리 높지 않고, 선루프가 뒷좌석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 선루프가 아니기 때문이다.
복잡한 골목길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들어선 뒤 가속 페달을 밟았더니 속도가 확 빨라진다. 325마력의 힘이 차체를 밀어붙여 순식간에 시속 100㎞에 다다른다. GT라인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단 5.2초면 된다. 이 정도로도 운전의 즐거움을 느끼기에 충분한데, 내년 하반기 출시될 진정한 고성능 모델 ‘EV6 GT’는 단 3.5초 만에 시속 100㎞에 도달한다고 한다. 국산차 중 가장 빠른 가속력이다.
가속 성능만 빨랐다면 아마 속도를 높이기 불안했을 것이다. EV6는 고속 주행에서 차체가 노면과 붙어 달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흔들림이 적었다. 일단 배터리가 탑재돼 차가 무겁고, 배터리가 차 하단에 있어 무게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차체가 보다 단단해지면서 드라이빙 머신으로 거듭난다. 주행 모드를 전환하는 버튼은 운전대에 붙어 있어, 주행 중 모드 변경이 쉬웠다.
EV6는 운전대 옆의 패들시프트로 회생 제동 단계를 조절할 수 있다. 가장 강한 4단계로 두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 차 속도가 빠르게 줄다가 정차한다. 브레이크 페달을 따로 밟을 필요없이 가속 페달을 밟는 정도로 속도를 조절하는 ‘원 페달 드라이빙’이 가능하다. 회생 제동이 강하면 더 많은 에너지를 회수할 수 있어 연료 효율도 개선된다. 시승 구간은 서울 성수동부터 경기 의정부까지 왕복 80㎞ 구간이었다. 고속 주행이 많았지만, 전비는 5.3㎞/kWh로 공인 전비(4.6㎞/kWh)보다 조금 더 잘 나왔다.
GT라인 모델의 완충 후 주행거리는 403㎞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 롱레인지 후륜 구동 모델(최대 475㎞)보다는 짧지만, 회생 제동 등을 감안하면 실사용에는 충분한 거리가 나온다. 선호도 높은 운전 보조 편의·안전장치는 다 탑재했다. EV6는 사전 계약으로만 3만대 넘게 계약되며 아이오닉5와 함께 국내 전기차 보급에 앞장서는 모델이다. 그럴 이유가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