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2021 수소모빌리티+쇼’가 열린 경기도 고양 킨텍스 전시장. 가장 큰 규모로 차려진 현대차그룹 부스에서는 정의선 회장이 직접 설명자로 나서 차세대 수소트럭인 ‘트레일러 드론’을 소개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내연기관 트럭이 전부 수소트럭으로 바뀌면 좋겠다”고 말하자 정 회장도 “그럼 좋겠다”고 답했다. 이날 주요 기업인들이 ‘수소’를 중심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향후 국내 기업들의 수소 사업에 추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
◇각 기업 어떤 역할 하나
수소경제가 활성화되려면 수소 생산·저장·운송·충전·활용 등 전반적인 수소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현대차는 수소 경제의 가장 끝단인 ‘활용’ 분야에서 선두에 있다. 1998년 개발을 시작해 세계적 기술력을 확보한 ‘수소연료전지’를 자동차 외에도 트램·도심항공기 등 다양한 운송 수단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수소 생산·저장 관련 사업은 SK·포스코·롯데·GS·한화·효성·이수 등이 주로 맡는다. 효성은 수소 충전소 구축에도 강점이 있다. 현대중공업은 수소 선박, 두산은 수소 발전, 코오롱은 수소연료전지 부품, 일진은 수소탱크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SK는 2025년까지 수소 생산·유통·공급을 위한 밸류체인을 구축한다. SK E&S는 연 3만t 규모의 액화수소 공장을 2023년 완공 목표로 인천에 짓고 있다. 포스코는 2050년까지 수소 500만t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철광석에 석탄 대신 수소를 넣어 쇳물을 뽑아내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상용화하는 거대한 계획도 있다.
롯데는 수소 생산뿐 아니라 수소저장용기 사업 진출도 꾀하고 있다. 최근 인천공장 부지에 수소탱크 상용화를 위한 시범 설비를 내년까지 구축하기로 했다. GS는 한국가스공사와 협업해 경기 평택에 2024년 완공 목표로 연 1만t 액화수소공장을 짓고 있으며, 한화는 물을 전기 분해해 수소를 얻는 ‘수전해 기술’을 2023년 목표로 개발 중이다. 효성은 수소충전소 구축 사업, 수소연료탱크에 쓰이는 탄소섬유 외에도 울산에 짓는 액화수소 공장(1만3000t)을 통해 수소 생산 사업도 확대한다. 두산은 두산퓨얼셀을 통해 발전용 수소연료전지를 생산하고 있다. 코오롱은 연료전지 부품과 연료탱크 소재, 풍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왜 수소 사업에 뛰어들었나
수소기업 협의체에 참여한 기업들은 대부분 탄소 배출이 많은 운송·정유·화학·제철 등 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들이다. 전 세계가 2015년 파리기후협정을 통해 ‘2050 탄소 중립’ 목표를 세운 가운데, 유럽은 2026년 탄소 국경세 도입을 추진하는 등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현대차는 수소 트럭을 통해 상용차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수소차는 수소 생산과 운송, 충전소 등 전체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으면 확산되기 힘들고, 규모의 경제가 이뤄져야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에 SK·포스코·롯데·한화·GS 등은 정유·제철·화학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수소를 ‘탄소 중립’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일본·독일·미국 등 수소 경제를 추진하는 선진국들도 민관이 나서 수소 협의체를 구성하고 있다. 생태계가 잘 구축된다면 수소 시장은 오는 2050년 글로벌 3000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전망했다.
블랙록 같은 거대 글로벌 투자자들이 글로벌 기업들에 탄소 중립을 압박하는 것도 기업들이 수소 경제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큰 이유다. 지난 2017년 225개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출범시킨 ‘기후행동 100+ 이니셔티브’는 전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 167개를 선정해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래리 핑크 블랙록 CEO는 블랙록이 주주로 있는 기업들에 보내는 공개 서한을 통해 “투자 결정 과정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점점 더 많이 고려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최용호 딜로이트컨설팅 파트너는 “주요 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2030년 수소가 석유 등 다른 연료와 비슷한 가격으로 떨어져 대중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