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글로벌모터스의 첫 작품, 캐스퍼 -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15일 오전 현대차로부터 위탁받아 생산하는 경형 SUV ‘캐스퍼’ 1호 차를 생산했다. 공영운(왼쪽부터) 현대차 사장, 박광태 GGM 대표이사, 이용섭 광주시장,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본부 의장이 출고식에 참석해 축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無)노조 경영, 국내 첫 온라인 판매 등 기존 완성차 업계와 다른 길을 선택한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성공적인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 회사가 위탁 생산하는 현대차의 첫 경형 SUV 모델 ‘캐스퍼’가 사전 계약 첫날인 14일 1만8940대 계약을 달성하며 초반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현대차는 “캐스퍼 사전 계약 대수는 현대차 역대 내연기관차 중에선 최고 기록”이라고 15일 밝혔다.

노사 상생과 지역 경제 기여를 목표로 하는 ‘광주형 일자리’를 내건 GGM이 이날 오전 광주 빛그린산업단지 내 공장에서 ‘1호차 출고식’을 갖고 본격 양산 체제에 돌입했다. 출고식엔 임서정 청와대 일자리수석, 김용기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이용섭 광주시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서정 수석이 대독한 기념 축사에서 “캐스퍼는 광주 시민과 노사, 지자체 관계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든 자동차”라며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고 지역 경제엔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현대차·산업은행이 공동 출자한 GGM의 출범은 그동안 대결적 노사 문화로 얼룩졌던 국내 자동차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기존 차 노조 견제할 수 있을 것”

광주형 일자리는 기존 자동차 업체 임금의 절반 수준인 공장을 만들어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의 일자리 모델이다. 주 44시간 근무에 연봉은 3500만원 수준이다. 고용 인원 90% 이상이 광주·전남 출신이며, 평균 나이는 30대로 현대차·기아(평균 50대)보다 훨씬 젊다.

2014년 아이디어가 처음 나오고 한동안 지지부진했지만, 2018년 현대차가 지분 투자 의향서를 광주시에 제출하면서 논의가 시작됐고, 2019년 1월 광주 지역 노·사·민·정이 상생 협약을 체결하면서 GGM 설립이 가시화됐다. 사업의 한 축이었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논의에서 빠지겠다고 하는 등 결렬 위기가 이어졌지만, 지난 4월 공장이 완공된 지 5개월 만에 이날 첫 차가 나왔다.

/자료=각 사

GGM은 1998년 완공된 르노삼성 부산공장 이후 23년 만에 국내에 들어선 자동차 공장이다. 광주 빛그린산단에 연 10만대 규모의 자동차 생산 설비를 구축, 현대차가 설계한 차량을 위탁 생산한다. 올해는 남은 석 달간 1만6000대를, 내년부터는 7만대 이상 생산할 계획이다. 이후 설비를 증설해 연 20만대 생산 체제를 갖추고, 채용 인력도 현재(505명)의 2배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근로자들의 임금이 적은 대신 정부·지자체가 복리후생을 지원해 임금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광주시는 2029년까지 GGM 직원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공공 직장 어린이집, 개방형 체육관 등도 건립해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직원들은 노조 대신 노사 상생협의회를 두고, GGM 공장의 누적 생산량이 35만대가 될 때까진 현재의 임금·복지 수준을 유지키로 했다. 적어도 3~4년간은 임금을 두고 파업하지 않겠단 의미다. 매년 하투(夏鬪)를 준비해왔던 기존 자동차 업체들과는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사회적 대타협을 기반으로 한 일자리 모델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기존 자동차 노조에도 귀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넘어야 할 산은 크고 높다

GGM이 첫 단추는 잘 끼웠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우선 약속한 대로 노사 상생 문화가 확실하게 정착되어야 한다. 35만대 생산 시점까지 파업을 벌이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노조를 결성하고 단체 활동을 하는 것은 노동법상 권리인 만큼 합의를 어길 경우 제재할 수단도 없다.

GGM이 만드는 차는 현재 경차로 분류되는 캐스퍼 단 한 종뿐이다. 그러나 경차 판매는 2012년 20만2000여 대(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 17.3%)에서 지난해 9만7000여 대(7.1%)로 줄었다. 캐스퍼가 팔릴 수 있는 시장의 크기가 반 토막 난 것이다. 결국 현대차에서 신차 생산 물량을 받아와야 하지만, 현대차 노조가 반대할 경우 물량 확보를 담보할 순 없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내연기관 경차 공장의 미래가 장밋빛은 아니다”라며 “결국 친환경차 생산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