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소명은 인류의 평화롭고 안전한 삶에 기여하는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평소 자주 하는 말이다. 자동차 중심의 현대차가 최근 장거리 이동을 돕는 도심 항공기 사업을 준비하고, 사람 대신 궂은 노동을 대신해줄 로봇 사업에 진출한 배경에는 정의선 회장이 오랫동안 구상해온 큰 그림, 현대차의 미래 전략이 있다.
정의선 회장이 오는 14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정 회장은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으로 실질적인 그룹 수장 역할을 해온 기간까지 포함해, 지난 3년간 현대차를 완전히 다른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큰 성과는 사업 구조 전환과 조직 문화 변화다.
◇창업 1세대 수준의 구조 개편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는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 정 회장 주도로 수년간 준비해왔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가 작년 12월 1조원의 거액을 들여 미국 로봇 기업을 인수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시 업계에선 구글과 소프트뱅크가 연이어 포기한 기업을 왜 사는 것이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미 2018년부터 사내 로보틱스팀을 신설해 로봇을 신사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이 관계자는 “정 회장은 창업 1세대 수준의 마인드로 현대차의 미래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했다”고 말했다. 실제 정 회장은 수석부회장 시절 “자동차 비율 50%, UAM(도심항공기) 30%, 로보틱스 20%인 회사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두 번째 신사업인 UAM 사업도 정의선 회장 취임 후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NASA(미 항공우주국) 2인자 출신인 신재원 부사장을 사장으로, UAM 본부를 사업부로 격상시켰고 물류용 UAM은 2026년, 여객용은 2028년 상용화를 위해 전 세계 주요 정부, 도시와 협업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최근 “중대형 트럭 신차는 수소차로만 만들겠다”고 밝히면서, “승용차는 전기차, 상용차는 수소전기차”라는 투트랙 전략을 분명히 했다. 최근까지도 “현대차는 수소차 하느라 전기차가 늦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차종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달리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명확히 한 것이다. 특히 제네시스는 완전히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하기로 했다.
조직 문화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정 회장은 평소 “미래 자동차 산업은 이종 산업 간 협업이 불가피한데, 지금 같은 폐쇄적·수직적인 문화로는 성공할 수 없다”며 수평적, 개방적 문화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그는 복장 자율화, ‘매니저’ 직급으로 단일화 등 다양한 변화를 주도했으며, 직원들과 직접 만나는 ‘타운홀 미팅’도 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3월 MZ 세대 직원들이 제기한 “성과 보상” 불만을 가감 없이 직접 듣고 개선을 지시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외부는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완벽한 설계가 돼있지만, 내부에는 수군이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래 차 핵심 기술 확보, 중국 사업이 과제
문제는 앞으로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미래차 패권을 두고 ‘카마겟돈’(카+아마겟돈, 미래차 대전쟁)으로 불리는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배터리부터 반도체,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전기차·자율주행차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내재화’ 노력이 한창이다. 도요타·폴크스바겐·GM 등 글로벌 유수의 완성차업체들보다 연구개발비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현대차(도요타의 5분의 1) 입장에선 선택과 집중, 그리고 더 과감한 선행 투자가 동시에 필요하다.
판매 부진이 심화하는 중국 사업을 어떻게 살릴지도 주요 과제다. 현장에 대한 이해로 묘책을 찾아내지 않으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을 잃을 수 있다. 박정규 한양대 겸임교수는 “자동차 산업은 에너지와 통신 기술이 합쳐지며 ‘산업의 종합 예술’이 돼가고 있다”며 “현대차는 현장과 기술을 잘 아는 인재를 더 많이 등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