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 시각)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 권역 본부장(사장)은 미국 현지 기자들과 화상 간담회를 하며 “차량용 반도체를 그룹에서 자체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세계 자동차 업계가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심각한 생산 차질을 빚는 가운데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반도체 역량 강화로) 외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 주요 경영진이 직접 반도체 자체 개발 계획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뇨스 사장은 “(반도체 자체 개발은) 엄청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면서도 “우리가 추진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현대모비스가 반도체 자체 개발의 중심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설계 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뜻”이라며 “반도체 생산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공장 건설에 수십조원이 드는 직접 생산은 하지 않겠지만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분야에서 필요한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개발하는 역량은 내재화하겠다는 의미다.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 /현대자동차

◇오트론 품은 모비스 “자율주행용 반도체 자체 개발 도전”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말 현대오트론의 반도체 사업부를 현대모비스와 합병하며 반도체 기술 내재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현대모비스의 자금력으로 반도체 부문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현대모비스의 기존 소프트웨어 개발과 오트론의 반도체 설계 역량을 합쳐 시너지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현대모비스는 다양한 차량 기능을 한 번에 제어하는 통합형 반도체를 시작으로, 전기차 전력 사용을 통제하는 전력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자율주행차용 고성능 반도체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현대차그룹이 세계 수준의 반도체 개발 역량을 확보하기까지 상당한 투자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2년 현대오트론 설립과 함께 삼성전자·SK하이닉스 출신 인재를 모으며 반도체 자체 개발에 나섰다. 그러나 반도체 개발은 지지부진한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원활히 돌아가면서 사업의 중요성이 떨어졌다. 실제로 올해 현대모비스에 합병된 반도체 사업부 직원 규모는 2012년 출범 당시 50명 안팎에서 현재 100여명으로 8년 사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테슬라·도요타…반도체 내재화 나서는 완성차 업체들

반도체 기술 역량을 키우고 나선 건 현대차뿐만이 아니다. 일본 도요타는 지난해 4월 부품 자회사인 덴소와 함께 반도체 개발사 ‘미라이즈’를 설립하고,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나섰다. 덴소는 또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짓는 반도체 생산 라인에 투자하고, 전용 설비를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도 자율주행차용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테슬라는 이미 차량에 직접 설계한 자율주행 반도체를 일부 적용하고 있는 가운데, 올 8월에는 수퍼컴퓨터에 쓰일 인공지능 전용 반도체 ‘D1′을 공개했다. 완전 자율주행차 시대를 겨냥해 고성능 반도체 개발 역량을 키우려는 것이다. 중국 전기차 기업 비야디는 차량용 반도체 제품을 자체 생산하며 반도체 공급난의 영향을 벗어났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업체들이 앞다퉈 반도체 직접 개발에 나선 것은 “반도체 공급난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도체 200~300개를 쓰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2000여 개의 반도체 부품이 필요한 전기차 시대가 다가오면서 반도체 수요는 폭증할 수밖에 없다는 것. 여기에 차량 모델에 맞춤형으로 직접 설계한 반도체를 쓰는 것과 아무나 살 수 있는 범용 반도체를 쓰는 차의 성능에 큰 차이를 낳는다. 박재근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자동차 성능을 가르는 핵심이 반도체가 된 이상, 똑같은 반도체를 쓴다면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차량 품질에 차이가 없게 된다”며 “반도체 내재화는 당장 생산을 위한 것뿐 아니라 미래 생존을 위한 싸움”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