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로 급속 전환하면서 전기차가 미래차 시대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실제로 가장 많이 팔리는 친환경차는 하이브리드차라는 사실이 통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들이 충전의 불편함 때문에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면서, 친환경차의 대안으로 충전 걱정 없는 하이브리드차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기차 육성에 집중해왔던 중국이 최근 하이브리드차를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시키고, 보급 목표를 늘리면서 하이브리드차 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향후 10년은 하이브리드차가 친환경차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기차 멋지지만… 실구매는 ‘하이브리드’

지난 1~9월 국내에서 팔린 전기차(4만8720대)는 전체 승용차 판매 중 4.3% 수준이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차(17만4307대)는 15.5%에 달했다. 현대·기아차가 그랜저·쏘나타 같은 세단뿐 아니라 최근 싼타페·쏘렌토 등 SUV 하이브리드차를 선보이면서 판매가 크게 늘었다. 전기차 선호도가 높은 유럽에서도 실제 판매량은 하이브리드가 더 높다. 지난 3분기 유럽 전체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는 10%, 하이브리드차는 30%(플러그인하이브리드 포함)였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최근 도요타가 유럽 시장에 하이브리드차를 공격적으로 판매하면서 작년 10%대였던 하이브리드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올 상반기 하이브리드 판매 증가율(149%)이 평균 상승률(29%)을 훨씬 뛰어넘었다.

‘전기차 굴기’에 집중해왔던 중국도 최근 하이브리드차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작년 10월 중국 정부는 친환경차 보급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하이브리드차를 친환경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시키는 한편, 하이브리드차 판매 비중을 2025년 40%, 2030년 45%, 2035년 50%로 가져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박정규 한양대 겸임교수는 “중국은 광활한 대륙이라 장거리 주행이 잦은 데다, 상하이 같은 대도시는 교통 체증이 극심해 충전이 불편한 전기차로는 한계가 있다”며 “전기차 배터리 기술이 획기적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하이브리드차가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하이브리드 포기하면 안 돼

전 세계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는 1997년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를 출시한 도요타다. 최근 일본뿐 아니라 중국·유럽·한국에 하이브리드 중심 판매 전략을 펼치면서 지난해 전체 판매량의 20%인 195만대를 하이브리드차로 팔았다. 도요타는 2030년에도 친환경차 판매량 800만대 중 600만대를 하이브리드차로 채운다는 계획이다.

하이브리드차는 가솔린 엔진에 전기모터가 유기적으로 결합돼 작동하는 차다. 대용량 배터리가 탑재돼 있어 기존 가솔린차보다 연료 소모가 적고 배출가스도 30% 정도 적다. 그러나 조립 기술이 복잡해 다른 자동차 업체들은 개발이 늦었다. BMW·벤츠 같은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기술 난도가 낮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최근 2~3년 사이 대거 출시하고 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전기모터와 엔진을 병립시킨 차로, 전기차처럼 충전이 가능하고 단거리(30~50㎞)는 전기로만 갈 수 있다는 편의성이 있지만 생산 비용이 비싸다. 유럽에선 2035년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모든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 같은 전략이 하이브리드 기술력이 높은 일본·한국 자동차 업계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현대차는 도요타의 특허를 피해 자체 기술 개발에 성공, 2009년 아반떼 하이브리드, 2011년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출시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판매 비중은 전체의 5% 수준(올해 1~9월)이다. 특히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2025년부터 신차는 전기차로만 출시한다고 발표하면서 하이브리드차를 너무 일찍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배충식 카이스트 교수는 “전기차는 충전 인프라, 배터리 재료 수급 등의 문제로 전체 차를 대체할 수 없다”며 “하이브리드차는 내연기관차를 실질적으로 대체할 주요 차종으로 10년이 아니라 그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