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GV60의 모습./오로라 기자

현대자동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출시한 첫 전용 전기차 ‘GV60′을 타봤다. 이 차는 2030년 전기차 브랜드로 완전 변신을 앞둔 제네시스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차다. 지난달 6일부터 시작된 사전 예약엔 3일만에 1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야심작인 만큼 현대차가 지금까지 축적한 각종 첨단 기술을 대거 적용했다는게 특징이다. 지난 3일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 주차장에 마련된 시승장에서 탑승해본 차량은 최상위 트림인 퍼포먼스 AWD에 풀옵션을 장착한 모델이었다. 보조금을 적용하지 않은 가격이 8800만원에 수준인 차다.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적용하면 서울시 기준 7780만원이다.

GV60 앞면 디자인. 내연기관차 처럼 커다란 크레스트 그릴이 눈에 띈다./오로라 기자

우선 전기차보다는 고급 내연기관차 같은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차량 전면에 내연기관엔 필수로 탑재되지만, 전기차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커다란 ‘크레스트 그릴’이 장착됐기 때문이다. 제네시스의 다른 차량과 디자인면에서 통일감을 주는 동시에, 공기흡입구를 배치해 차량 하단의 배터리를 냉각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GV60의 차 길이는 4515mm, 너비는 1890mm, 높이는 1580mm다. 전체 길이는 아이오닉5(길이 4635mm)나 EV6(4680mm)보다 작지만, 실내 면적을 좌우하는 휠베이스(축간거리)는 EV6와 같은 2900mm다.

GV60에 탑재된 카메라의 모습. 키가 없어도 안면인식으로 차 문을 열 수 있다./현대자동차

GV60는 현대차그룹 차량 중 처음으로 ‘안면인식 키’ 기능을 적용했다. 디지털 키가 없어도 카메라에 등록해 둔 얼굴을 읽히면 차 문이 열리는 것이다. 카메라는 차량 좌측 운전석과 뒷자석 사이에 네모난 모양으로 탑재돼 있다. 차량에 다가가 운전석 손잡이를 터치하면 렌즈 주변에 하얀색 동그라미가 뜨며 안면을 인식한다. 얼굴 정보가 맞으면 동그라미가 초록색으로 바뀌며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린다.

유리 구슬 처럼 생긴 변속기. 시동을 걸면 공이 돌아가며 조작계가 나타난다./오로라 기자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보니 개방감이 생각보다 컸다. 운전대 앞으로 하나로 연결된 파노라믹 디스플레이가 배치됐고, 차량에 관련된 대부분 제어 활동은 이 디스플레이에서 모두 조작이 가능하다. 미리 지문을 등록해두면 차 키가 없어도 지문 인식기에 손을 갖다대는 방식으로 시동을 걸고 출발 할 수 있다. 전자 변속기는 투명한 유리구슬 처럼 생겼는데, 시동을 켜면 공이 회전하며 오른쪽·왼쪽으로 회전할 수 있는 조작계가 나타난다. 디자인은 한 층 더 고급스러워졌지만, 전기차를 처음 타보는 사람이라면 생소한 조작계의 모습에 적응 시간이 어느정도 필요할 것 같았다.

파노라믹 디스플레이에 각종 시각 정보가 표현돼 있다./오로라 기자

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자 전기차 답게 시원하게 속도가 붙으며 차량이 앞으로 움직였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차 속도가 어느정도 줄어들지만, 급격하게 줄며 멀미를 유발하는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줄었다. 회생제동 수준을 최저로 낮추면 발을 뗐을 때 속도가 느려지는걸 거의 느끼지 못하기도 했다. 페달을 밟으면 전기차 특유의 ‘위잉’하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데, 주행 시 내연기관 엔진음이 나도록 설정할 수 도 있었다. 실제로 설정을 바꿔보니 내연기관 차를 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이 컸다. 1회 충전시 최고 주행거리는 368km다.

버튼을 누르면 충전구가 저절로 닫힌다./오로라 기자

배터리가 자체 하단에 있어 무게 중심이 낮은 덕에 주행질감은 전체적으로 매끄러웠지만, 고속 주행을 할 때는 차체 떨림이 느껴지는 편이었다. 과속방지턱 등 장애물을 지난 때 바닥에서 전해지는 울렁감도 없진 않았다. 고속 코너링을 하는 경우엔 차가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도 아예 피하긴 어렵다.

단 운전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면 알아서 좌석 등받이가 좁아지며 허리를 잡아주고, 엉덩이 부분이 밑으로 꺼지며 몸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기능은 좋았다. 이런 변화는 운전대 우측 하단에 있는 ‘부스트’ 버튼을 눌렀을때도 자동으로 적용된다. 부스트 버튼을 누르면 정지 상태에서 4초만에 속도가 시속 100㎞까지 올라간다. 고속도로 처럼 뻥 뚫인 차로에서 주행 중에 버튼을 누르니 순간 속도가 빠르게 올라가 운전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AR내비게이션이 작동하는 모습./오로라 기자

이 차량에 적용된 AR(증강현실) 내비게이션 기능도 현대차의 첨단 기술 중 하나다. 주행 중에 좌·우회전을 해야하거나, 고속도로에서 출구로 빠져야 할 때면 디스플레이에 차량이 진행하는 실시간 영상이 뜨며 가상의 화살표가 진행해야 하는 방향을 알려준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디스플레이에서 뿐 아니라, 운전자 정면의 계기판에서도 주행 내내 이 내비를 작동 시키며 운전 할 수도 있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내비게이션을 잘못 읽어 출구를 틀리게 찾는 불상사는 없어질 것 같았다.

디지털 사이드 미러가 차선 변경시 예상 차간 거리를 표시해주고 있다./오로라 기자

시승 차량에는 디지털 사이드 미러가 탑재돼 차선을 바꿀 때 뒤에서 오는 차량과의 예상 차간 거리를 알 기 쉽게 선으로 표시해줬다. 다만 이 차에는 너무 다양한 운전 보조 장치가 있다보니 HUD(헤드업디스플레이)에서 보여주는 차량 속도나 내비게이션 정보들은 거의 보지 않게됐다. 시각 정보가 너무 많아 오히려 판단이 느려진다는 느낌도 있었다. 다른 편의 장치를 사용할 생각이라면 HUD는 꼭 추가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제네시스 GV60에 적용된 뱅앤올룹슨 스피커./뱅앤올룹슨

GV60의 또 다른 특징은 차량 내부 곳곳에 있는 17개의 뱅앤올룹슨 스피커가 원하지 않는 도로 소음을 제거해주는 기능이 탑재됐다는 것이다. 전기차는 엔진음이 없어 상대적으로 노면 소음이 더 크게 들리는데, 스피커에서 소음을 상쇄하는 ‘제어음’을 내보낸다. 잡음과 상쇄하는 주파수를 계산해서 재생해주는 기술인 것이다. 실제로 고속 주행시 따로 음악을 틀어놓지 않아도 일반 아이오닉5 대비 풍절음, 타이어 마찰음이나 도로의 소음들이 훨씬 적게 들렸다. 당연한 소리지만, 창문을 열면 소음과 제어음의 주파수 상쇄 작용이 일어나지 않아 소음 제거가 불가능해진다. 이어폰의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귀를 꽉 채우는 커널형 제품에서만 적용되는것과 같은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