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에서 현대차·기아 판매량은 53만대로 점유율 2.7%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2009년 전체 2위까지 등극했던 현대차는 지난해 12위까지 밀려났다. 현대차그룹이 미끄러진 사이, 일본 도요타는 폴크스바겐·GM 다음인 3위에 올랐다. 2016년 4.5%(7위)던 점유율이 지난해 2배 수준인 8.4%까지 치솟은 것이다. 같은 기간 일본 혼다도 점유율이 5.4%에서 7.8%로 상승하며 랭킹 4위에 올랐다.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은 식민 지배 등 역사적인 문제로 인해 반한 감정보다 뿌리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 차업체들은 2012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 당시 ‘사드 보복’과 비슷한 정치 보복을 당했다. 그런데 중국 시장에서 현대차는 계속 밀리고, 일본차는 진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사드 보복 때문만은 아니다. 결국 제품 경쟁력과 전략에서 밀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반떼와 코롤라 가격 비슷” 가성비에서 밀렸다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준중형 세단’ 시장에서 현대차 엘란트라(한국명 아반떼)는 10위권에 들지 못하고 있다. 이 차의 현지 판매 가격을 원화로 환산하면 약 1840만~2500만원인데, 일본 동급 세단인 도요타 코롤라(2060만~2560만원)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SUV 가격은 현대 투싼(3480만~4230만원)이 도요타 와일드랜더(3220만~4250만원)나 혼다 CR-V(3180만~4340만원)보다 최저 가격이 오히려 비싸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소비자들은 ‘독일계·일본계’를 묶어 고급차로 분류한다”며 “가격에 큰 차이가 없으니 브랜드 프리미엄이 있는 차를 고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차 가격이 낮은 것도 소비자들이 현대차를 외면하는 큰 이유다. 쏘나타의 3년 차 중고차 가격은 신차 값의 50%인데 도요타 캠리는 78%, 혼다 어코드는 75%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현대차는 출시 뒤 6개월이 지나면 할인 판매한다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 현대차가 초기 장악했던 중저가 차량 시장은 중국 현지 브랜드가 잠식하고 있다. 현지 브랜드 1위 업체 지리차는 디하오라는 준중형 세단을 엘란트라보다 500만원 이상 싼 1310만~1670만원에 팔고 있다. 디하오는 세련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중국인이 많이 쓰는 지도 앱을 적용해 준중형 세단 ‘톱 10′에 들고 있다.
◇과도한 확장이 화를 불렀다
현대차는 중국 시장 진출 초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차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과도한 확장에 따른 설비 과잉으로 비용이 증가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2002년 베이징 1공장 가동을 시작으로 2008년 2공장, 2012년 3공장까지 연 30만~45만대 규모의 거대 공장을 빠른 속도로 늘렸다. 기아까지 합치면 2014년 생산 능력이 180만대까지 확대됐다. 여기서 멈춰야 했지만, 현대차는 내륙 지방 진출과 중국 정부의 수도권 개발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려 공장 2개를 한꺼번에 더 지었고 2018년 생산 능력을 270만대까지 확대했다. 당시 중국에선 ‘현대 속도’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다. 하지만 현대차그룹 연 최다 판매량은 179만대(2016년)에 그쳤다. 최근 일부 공장 매각으로 생산능력을 220만대로 줄였지만, 설비 과잉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동반 진출한 120여 협력사는 초기 빠른 증산에 도움이 됐지만, 현대차에만 의존하던 부품사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현대차의 부품 조달 비용도 도요타나 혼다 등 경쟁 업체보다 비싸졌다. 박승찬(용인대 교수) 중국경영연구소장은 “현대차는 뒤늦게 현지 부품사 조달을 늘렸지만, 현지 부품사들은 중국 완성차업체들에 주는 가격보다 30% 비싸게 공급했다고 들었다”며 “현대차가 중국 현지 업체들만큼 싸게 차를 만들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현대차는 중국의 1인당 GDP가 5000~6000달러 수준일 때 잘나갔다”며 “하지만 1만달러(2019년)를 넘어선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략이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