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는 지난 6일 중국 우한에 첫 전기차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연간 12만대 규모로 2024년부터 가동한다. 지난달 중국 승용차 판매 20%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 중인 전기차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설비를 늘리는 것이다. 도요타는 1년 반 전 톈진에 착공한 연 20만대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오는 6월 가동한다. 도요타는 이곳에서 차세대 전기차 ‘BZ’ 시리즈와 중국 BYD와 공동 개발한 중국 전용 전기차를 올해 동시다발적으로 출격시킨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중국에서 공장 2곳을 문 닫을 정도로 부진이 심각하지만, 2012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으로 위기를 겪었던 일본차는 회복 단계를 넘어 친환경차 시장까지 전선을 넓히며 진격 중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2035년 신차 판매의 50%를 하이브리드차로 채운다는 로드맵까지 발표하면서, 하이브리드 강자인 일본차가 중국에서 전성기를 맞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센카쿠 분쟁, “더 좋은 차 내놓자”로 대응
센카쿠 분쟁 당시 중국에선 일본차를 부수거나 불 지르고, 운전자를 폭행하는 반일 시위가 비일비재했다. 2012년 9~10월 일본차 판매량은 사드 보복 때의 현대차처럼 반 토막 났다. 하지만 대응 전략은 한국과는 달랐다. 도요타·혼다 등은 차량 피해 금액의 보험 한도 초과분을 부담해주는 ‘고객제로부담제’를 도입하고 신속한 차 수리를 약속했다. 중고차 가격이 방어되면서 우수 딜러와 충성 고객도 유지됐다. 할인 판매로 대응한 현대차가 딜러 이탈, 브랜드 이미지 하락을 겪은 것과 달랐다.
일본차 업체들은 판매 부진을 반일 시위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분쟁 이전부터 판매가 하락했다는 점을 인지하고, 중국 소비자가 원하는 차가 아니라 일본에서 쓰는 모델을 그대로 들여와 외면받고 있다고 반성한 것이다. 혼다는 2013년부터 3년간 중국 소비자 취향에 맞는 신차 10종을 대거 출시했다. 도요타도 해마다 3~5개의 신형 세단과 SUV를 잇따라 내놓았다.
일본차 업체들은 부품 공용화, 현지화를 통해 가격 경쟁력도 확보했다. 혼다는 철저한 부품 현지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 가성비 높은 SUV인 CR-V를 만들어냈다. 도요타는 2015년 부품 공용화율을 높인 TNGA라는 새로운 설계방식을 구축하면서 원가를 크게 절감했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상황에 따라 조바심을 내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브랜드와 기술에 집중한 것이 일본차가 위기를 극복한 비결”이라고 말했다.
◇물밑 외교, 중국에 하이브리드 기술 전수
중국에 하이브리드 기술을 전수하며 급성장하는 친환경차 시장을 주도해 온 것도 일본차 부활의 비결이다. 도요타는 기술 유출 우려로 하이브리드차를 수출만 하다가 2005년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의 중국 생산을 결단했다. 2013년엔 장쑤성에 완공한 도요타 연구개발센터를 통해 하이브리드 기술 현지화를 추진했다. 혼다 역시 2012년부터 합작 파트너들에 하이브리드 핵심 기술을 전수했다. 박정규 한양대 겸임교수는 “도요타는 중국 하이브리드차 시장을 키우기 위해 오래전부터 공을 들였다”며 “중국 정부는 넓은 대륙에선 전기차만으로 탄소중립이 힘들다고 보고 하이브리드차를 내연기관차의 대안으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 교수는 “일본의 소재·장비·부품을 수입해야 하는 중국은 일본과 물밑에서 과학기술자 간 교류회를 지속해왔다”며 “미국과의 갈등이 격화되자 고립을 피하기 위해 일본과 기술 협력을 강화하면서 일본차도 수혜를 입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