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가 이달 국내에 출시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296 GTB’. “전기차를 생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페라리는 2025년 순수 전기차 출시를 준비 중이다. /페라리

영국의 대표 럭셔리카 브랜드 벤틀리가 26일(현지 시각) “2030년까지 모든 차를 전기차로 내놓기 위해 34억달러(약 3조8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벤틀리는 영국 내 유일한 벤틀리 조립 공장을 전기차 공장으로 전환해 2025년 첫 전기차를 출시하고, 2030년까지 매년 새 전기차 모델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벤틀리뿐 아니다. 롤스로이스·람보르기니·페라리·마세라티 등 내연기관차 특유의 매력을 최대 경쟁력으로 내세웠던 글로벌 럭셔리·수퍼카들이 잇따라 전기차 전환을 선언하고 있다. 전 세계 탄소 규제가 강화되면서 엔진 배기량이 클수록 더 큰 벌금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되자 엔진에 대한 고집을 꺾고 투항하고 있는 것이다.

◇백기투항하는 수퍼카들

굉음을 내며 도로를 질주하는 스포츠카의 대명사 람보르기니의 슈테판 빙켈만 CEO는 지난 23일 “순수 내연기관차 모델을 내놓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람보르기니의 대표 모델인 아벤타도르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모델을 내년 출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모든 차종에서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전동 모델을 내놓겠다고 했다.

벤틀리 벤테이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이탈리아 수퍼카 페라리도 2025년 첫 순수 전기 스포츠카를 출시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2019년 말부터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스포츠카도 내놓고 있다.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존 엘칸 페라리 회장은 지난해 6월 반도체 전문가인 베네데토 비냐를 CEO로 앉혔고, 비냐 CEO는 내연기관차에 미련을 못 버리는 임원들을 줄줄이 내보냈다. 페라리는 “페라리 사전에 전기차는 없다”던 회사였다. 201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당시 CEO는 “페라리의 매력은 요란한 엔진 소리”라면서 “전기로 움직이는 페라리는 절대 생산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던 것에 비해 엄청난 변신인 셈이다.

강렬한 배기음으로 유명한 마세라티도 전기차 시대로의 대전환이라는 흐름 앞에 백기를 들었다. 마세라티는 2019년 이탈리아 모데나 공장을 전동화를 위해 전면 리모델링했고 작년부터 하이브리드 수퍼카를 잇따라 출시했다. 내년에는 이탈리아어로 ‘번개’라는 뜻인 ‘폴고레’ 프로젝트를 통해 순수 전기차를 출시한다. 마세라티 수입사 FMK 관계자는 “이 모델은 내연기관차의 매력을 지키기 위해 인공 배기음과 인위적 진동을 발생하는 모드를 장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수제 럭셔리카 브랜드 롤스로이스는 올해 첫 순수 전기차를 출시하며 2030년까지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전기차 춘추전국시대… 테슬라 독주 끝난다

폴크스바겐·GM 같은 대중차 업체들뿐만 아니라 럭셔리·수퍼카 업체들까지 전기차 전환 대열에 합류하면서 세계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이 때문에 전기차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의 선점 효과를 만끽했던 테슬라의 독주 시대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테슬라는 26일(현지 시각) 역대 최대 실적을 발표했지만, 주가 상승은 미미했다.

테슬라의 작년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5% 증가한 177억달러(약 21조원), 순이익은 무려 8.6배인 23억21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서 수익성이 급격하게 좋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날 테슬라 주가는 2.07% 상승에 그쳐 937.41달러로 마감했다. 올 초 1200달러를 회복했던 테슬라 주가는 최근까지 하락세를 이어왔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새로 출시하는 전기차는 중국을 제외하고도 최소 100종 이상으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