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는 12일 차량 57만8607대에 대해 리콜을 발표했다. 차량에 탑재된 ‘붐박스’ 기능이 문제가 됐다. 이 기능은 ‘빵빵’ 소리를 내는 경적 대신, 운전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경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보행자가 음악 소리를 경적으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어 정부 안전 기준을 위반했다’면서 리콜 지시를 내렸다. 테슬라는 2월에만 이미 4건의 리콜을 발표했다. 사흘에 한 번꼴로 리콜이 터진 셈이다. 누적 리콜 차량 대수는 147만대에 달한다. 지난해 10월 이후부터 보면 4개월 동안 리콜을 11건 발표했다. 잦은 리콜에 일반 완성차업체라면 집단소송을 당하거나 막대한 비용 부담으로 주가 폭락 사태를 빚을 수 있지만 테슬라는 끄떡없다. 주가는 작년 10월 초(주당 780달러)보다 10% 올랐다. 차량 판매에도 영향이 없고, 소비자 항의나 불만이 폭주하는 일도 없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테슬라가 기존 완성차업체들과 다른 방식으로 자동차를 개발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테슬라가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신기술을 추가하거나 성능을 개선하고, 출시 이후 문제가 되면 스마트폰처럼 무선 업데이트로 리콜을 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계공학 위주로 발전해온 자동차 산업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축이 바뀌면서 생긴 현상이다.
◇리콜 잦지만, 비용 거의 들지 않는 테슬라
테슬라는 차량 앞유리 성에 제거 소프트웨어 문제, 자율 주행 소프트웨어 문제, 안전벨트 경고음 문제로도 리콜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자동차 리콜은 안전 당국이 결함을 지적하면, 차량 구매자들에게 우편과 메일로 이를 통보하고 정비소나 공장에 오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테슬라는 모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해결할 계획이다. 프로그램 개발만 끝나면 2~3일 안에 리콜은 완료된다.
테슬라만의 원격 리콜이 가능한 것은 2012년 업계 최초로 상용화한 ‘OTA(Over the air)’라는 이름의 무선통신 기술 덕분이다. 차량이 스스로 무선통신에 접속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고, 소프트웨어가 차량의 대부분 하드웨어를 통제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운전자는 차량 대시보드에 뜬 공지를 확인하고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업데이트된다. 실제 작년 11월 테슬라 긴급 제동 소프트웨어 리콜은 3일 만에 대상 차량의 99.8%가 완료됐다. 테슬라의 OTA 리콜은 원격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도 하드웨어 문제 해결까지 가능해 소비자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고, 리콜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OTA·소프트웨어에 앞선 테슬라, 뒤처진 경쟁사
최근 뉴욕타임스는 테슬라의 리콜 방식에 대해 “테슬라가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탑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소프트웨어 기술에서 뒤처지는 것은 전통 완성차업체에 큰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단순 리콜뿐만 아니라 자율 주행을 비롯해 앞으로 차량에서 기계적인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의 역할과 기능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완성차업체들은 최근에야 본격적인 OTA 탑재에 나섰다. 폴크스바겐은 전기차에만 OTA를 탑재했고, GM은 내년부터 전 차종에 OTA를 탑재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제네시스와 아이오닉5 등 2021년 이후 출시한 신차에 OTA를 넣었다.
테슬라와 달리 소프트웨어 기술을 외부에 의존하는 것도 기존 자동차 제조사의 골칫거리다. 자체 소프트웨어가 없는 업체들은 대부분 애플의 카플레이나 구글 안드로이드오토처럼 스마트폰 화면을 차량 내 디스플레이로 보여준다. 하지만 애플과 구글이 수시로 OS(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하다 보면, 차량과 연결 오류가 생긴다. 차량의 시스템이 OS 업데이트를 못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이 갑자기 꺼지거나, 느닷없이 음악 소리가 커지는 등의 버그가 생기기도 한다. 이미 수차례 이와 관련한 소비자 소송이 벌어져 일본 스바루·미국 혼다 등은 배상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테슬라가 이미 OTA와 소프트웨어 기술 인재를 대거 빨아들여 완성차 기업들은 인재난을 겪는 상황”이라며 “자동차 소프트웨어 기술 격차를 빠르게 따라잡아야 자율 주행 시대 글로벌 경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