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차를 주문해도 6개월에서 1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신차 출고 대란’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반도체가 없어 차를 못 만든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를 제조하는 기업부터 완성차 업체까지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 성적표를 내놓고 있다.
글로벌 톱3 자동차 반도체 기업인 일본 르네사스는 지난해 매출 9940억엔(약 10조3000억원), 영업이익 1836억엔(약 2조원)을 기록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2020년보다 매출은 39%, 영업이익은 180% 증가했다. 르네사스는 지난해 일본 내 핵심 공장 화재로 반도체 생산이 3개월간 지연됐는데도 매출·영업이익이 모두 크게 늘었다. 밀려드는 주문에 재고가 동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차량용 반도체 점유율 1위인 네덜란드 NXP도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13조원)을 냈다. 영업이익(3조원)은 전년보다 5배 이상 급증했다. 독일 인피니언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9%, 153% 늘었다.
차량용 반도체는 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단위의 공정 경쟁을 하는 모바일·PC용 반도체와 비교해 기술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전기차 전환을 계기로 차량에 각종 첨단 기술이 탑재되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폭증한 데다 코로나로 글로벌 공장 곳곳이 셧다운되면서 공급 부족과 함께 가격이 폭등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역시 반도체 부족 탓에 생산 차질을 빚고 비용 부담까지 커졌지만 작년 큰 폭의 실적 개선을 이뤘다. 일본 도요타는 작년 1~3분기 매출이 20% 늘고, 순이익은 역대 최고 수준인 24조원을 기록했다. 독일 폴크스바겐의 1~3분기 영업이익은 7배 늘었다. 현대차도 지난해 매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메르세데스 벤츠·BMW 등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매출·영업이익 모두 급증하는 추세다. 2020년 코로나 초기 급감했던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는데 생산량은 줄면서 오히려 자동차를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완성차 업체들은 주요 인기 차종의 가격을 올리고 딜러에게 주는 인센티브도 대폭 줄여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 소비자들로서는 할인 혜택이 줄어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