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코플랜트(옛 SK건설)는 21일 싱가포르 전자 폐기물 처리 업체 테스를 1조2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SK에코플랜트는 이날 테스의 최대 주주인 나비스 캐피털 파트너스로부터 지분 100%를 인수하는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테스는 폐배터리를 비롯한 전기·전자 폐기물에서 니켈이나 코발트 등 원자재를 추출하는 업체다. 배터리 업계에선 SK그룹이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에 본격 진출을 선언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SK뿐 아니라 GM과 포드도 최근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가진 레드우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배터리 1위 업체 중국 CATL은 후베이 이창시에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짓고 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폐배터리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폭발 위험에 따른 보관·처리 어려움과 낮은 경제성 탓에 쓰레기 산업으로 불렸지만 최근 전기차 보급 확산, 원자재 값 급등으로 대우가 바뀐 것이다.
◇폐배터리 재사용과 재활용, 경제성 높아진다
한국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000개 미만인 국내 폐배터리는 전기차 확대와 함께 2025년 8300여 개로 증가하고 2029년이면 8만개로 급증할 전망이다. 글로벌 기준으로는 2030년 414만개, 2040년 4636만개가 배출된다는 예측도 나온다.
폐배터리 처리 방식은 크게 재활용과 재사용으로 나뉜다. 재활용이란 폐배터리를 분해한 후 금속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재사용은 초기 용량의 70~80% 수준으로 감소한 폐배터리를 ESS(에너지 저장 장치)나 캠핑용 충전기 등으로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업계 관심은 재활용이다. 재활용은 배터리를 파쇄·분쇄해 분말로 만든 후 황산 용액을 혼합해 금속을 추출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국내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진 곳으로 꼽히는 성일하이텍은 “전지에 사용된 코발트는 90~95%, 리튬은 70~80% 회수 가능하다”고 했다. 스웨덴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는 “신규 채굴 원재료와 대등한 순도로 95% 금속을 회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100만원가량으로 여겨지던 전기차 폐배터리 1개 가치가 최근 2배 이상 증가했다고 본다. 원자재 값 상승 때문이다.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니켈 값은 99%, 코발트는 54%, 탄산리튬 가격은 500% 올랐다. 전기차에 주로 쓰이는 배터리엔 니켈 36㎏, 코발트 12㎏, 탄산리튬 7.4㎏이 사용되는데 이를 모두 추출하면 300만원가량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분주해진 업체들, 안전사고 대책도 강구해야
폐배터리 재활용 업계에선 앞으로 2~3년간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에 따라 선도 기업의 순서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한다. 테슬라의 경우 원자재의 92%를 회수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지난해에만 니켈 1300t, 구리 400t, 코발트 80t을 재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들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과 미국 배터리 재활용 업체 라이사이클에 600억원을 투자해 지분 2.6%를 확보했다. 양사는 이 업체로부터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니켈 2만t을 10년간 공급받을 예정이다. 삼성SDI는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피엠그로우에 지분을 투자했고, 포스코는 중국 화유코발트와 포스코HY클린메탈을 설립해 전남 율촌산업단지에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건설 중이다. 지금까지 배터리 해체 작업을 수작업으로 해오던 업체들은 최근 자동화 공정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성일하이텍의 경우 전기차 10만대 분량의 폐배터리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정부도 뒤늦게나마 법 개정을 통해 업체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전기차에서 나오는 폐배터리는 지자체가 수거해 보관하는 것만 가능했지만, 올해부터 이를 민간에 매각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한 재활용 업체 관계자는 “금속 추출 기술뿐 아니라 폭발물인 폐배터리를 다루며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한 대책도 강구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