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주행 3단계 시대가 다가오면서 정밀 지도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현대차는 오는 4분기 국내 최초로 자율 주행 3단계를 제네시스 G90에 적용할 예정이다. 차량 조향·속도 조절을 돕는 현재의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가 2단계라면, 3단계부터는 목적지를 찍으면 차선 변경·추월 등 한 차원 높은 동작을 차량 스스로 수행한다.

자율 주행 3단계의 핵심 기술 중 하나가 바로 HD맵(High Definition Map·고정밀 지도)이다. 일반 내비게이션 지도 ‘SD맵’(Standard Definition Map)은 오차 범위가 m(미터) 단위 수준이다. 하지만 HD맵은 오차를 10cm~20cm 단위로 줄여 10배 이상 정확하다. 차선·도로뿐 아니라 지형의 고저(高低)와 커브의 곡률, 신호등과 표지판 정보 등 주변 환경 정보까지 3차원 입체로 구현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사 현대오토에버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구축한 HD맵. 각 차선과 교차로의 곡률, 도로 표식, 주변 경관까지 정밀하게 인식돼있다. /현대오토에버

◇차의 안전과 경제성에 필수

HD맵 시장 세계 1등 기업은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히어(HERE)’다. 전 세계 300만km가 넘는 도로 HD 데이터를 확보했고, 90여 국에 서비스하고 있다. 본래 노키아 위성지도사업부에서 분사한 회사로, 2015년 우버·완성차 제조사들이 인수를 두고 치열하게 다퉈 ‘BMW·벤츠·아우디 컨소시엄’이 약 3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독일 3사 자동차의 자체 내비게이션과 ADAS는 히어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프랑스 르노는 2위 업체인 ‘톰톰’과 협업하고 있고, 스텔란티스와 혼다는 구글 자회사 웨이모와 함께 HD맵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선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 개발 계열사인 현대오토에버가 주도하고 있다.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차그룹에 ‘ADAS맵’을 공급하고 있다. 단순 SD맵과 HD맵의 사이 단계의 지도로, 제한속도·분기점 등 해당 도로의 특징을 추가로 입력한 지도다. 현대오토에버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HD맵과 정밀 지도 송수신기 등을 현대차에 공급할 계획이다.

HD맵은 자율주행차의 안전과 경제성에 기여한다. 자율주행차가 고속으로 달릴 때는 카메라·레이더 같은 센서가 차량·사람·도로를 완벽하게 판별하고 1초 안에 차를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다. 정밀한 지도 데이터가 차에 입력돼 있으면 차량이 어느 정도 환경을 예측하고 달릴 수 있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또, 자율 주행 AI(인공지능)가 지도를 바탕으로 사전 학습을 하면, 하드웨어 스펙도 낮출 수 있어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네이버·카카오 등 IT 기업들도 HD맵 구축에 뛰어들어

네이버·카카오 등 IT 기업들도 HD맵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말 HD맵을 기반으로 고도화한 자율 주행 소프트웨어 ‘알트라이브’ 실증 영상을 공개했다. 알트라이브 차량은 서울 시내에서 차선·보행자등을 구별해 주행하고, 복잡한 지하 주차장도 능숙하게 통과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올해 핵심 과제 중 하나로 ‘HD맵 구축’을 선정하고, 작년 말 HD맵 시스템 개발 스타트업 스트리스를 인수했다. SKT는 히어와 손잡고 고도화된 T맵을 준비 중이다.

HD맵이 모빌리티 서비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비게이션에 HD맵이 적용되면 ‘광화문에서 강남까지 빨리 가려면 남산터널을 지나서 4차선으로 달리세요’라고 알려주는 서비스가 가능하다. 또, 정교한 택시 예약과 위치 안내, 미래 UAM(도심항공서비스) 등 사업과 연결될 수 있다. HD맵 시장은 현재 2~3조원 규모지만, 앞으로는 수십 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