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22일(현지 시각) 독일 브란덴부르크의 그룬하이데에 첫 유럽 공장인 기가 베를린(기가팩토리 베를린)을 오픈 했다. /EPA, 연합뉴스

“10년 뒤 연산(年産) 2000만대 실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 3월 22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말했다. 베를린 근교의 첫 테슬라 유럽 공장 개소식에서였다. 머스크가 ‘10년 뒤 연 2000만대’를 처음 말한 것은 2020년 9월 배터리 신기술 행사에서였는데, 이 말을 재확인한 것이다. 업계 상식으론 허언(虛言)처럼 들린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폴크스바겐도 각각 연간 1000만대 내외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작년에 94만대를 팔았다.

그런데도 머스크의 말이 단순한 허언으로 여겨지지 않는 건 테슬라의 증산(增産) 스피드가 업계 상식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10년 전만 해도 연간 1만대도 못 파는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7년 10만대를 넘었고, 2018년 25만대, 2019년 37만대, 2020년 50만대, 작년 94만대로 최근 급상승 중이다.

우선 테슬라는 연말까지 연산 200만대 체제를 갖출 전망이다. 기존 캘리포니아·상하이 공장에 이어, 베를린 공장이 가동을 시작했고 연내에 텍사스 공장까지 더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기존의 연장선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새로 접근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업계 표준인 ‘도요타 웨이(도요타 생산방식)를 버리고 ‘테슬라 모드(테슬라 생산방식)’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 ‘기가 프레스’의 충격

테슬라가 생산을 빠르게 늘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기가 프레스(Giga Press)’ 기술이다. 알루미늄을 녹인 액을 틀에 부어 거대한 부품을 통째로 주조(鑄造)하는 것이다. 테슬라는 자사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Y’의 리어 섀시(Chassis·차량의 뼈대)를 이렇게 만든다. 금속판 80개를 용접해 만들던 것을 하나의 주조품으로 대체했다. 자동차 제조가 장난감 차 찍어내듯 바뀌는 셈이다.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들던 용접 공정을 없애 대폭의 비용 절감·경량화·공정 단축·품질 향상을 노렸다. 테슬라에 따르면, 해당 섀시부품의 제조 비용은 40%, 무게는 30% 줄었다.

기술은 계속 진화 중이다. 베를린 신(新)공장에선 리어뿐 아니라 프런트 섀시도 한 번에 주조한다. 이렇게 되면 모델Y 골격은 프런트 섀시, 배터리팩, 리어 섀시로 이어지는 부품 3개가 전부다. 기존 차량은 이 구조를 만드는 데 패널 수백 개를 용접해야 한다. 전체 작업에는 용접 로봇 1000대가 필요한데, 테슬라의 경우 이 중 3분의 2가 불필요해진다. 그만큼 비용·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더 빨리 생산을 늘릴 수 있다.

다른 자동차 회사도 테슬라 방식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폴크스바겐은 독일 북부에 2023년 착공하는 신공장에 초대형 알루미늄 주조 기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부품 100개를 용접해 만들던 것을 하나로 주조, 대당 생산 소요 시간을 30시간에서 10시간으로 끌어내린다는 목표다. 볼보도 2025년까지 지을 차세대 전기차 공장에 알루미늄 주조 기계를 도입한다.

기존 업체들이 테슬라 주조 기술을 따라잡는 게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박형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기가 프레스를 따라가려면, 차량의 완전한 재설계와 함께 소재 개발부터 생산 기술까지 큰 혁신이 필요하다”면서 “스페이스X 개발 경험으로 알루미늄합금 등의 소재 기술을 축적한 테슬라와 달리, 기존 업체들은 소재 개발 등을 외부에 맡겨 왔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도요타에서 배웠지만 도요타의 목을 겨눈다

캘리포니아의 테슬라 본사 공장은 원래 도요타·GM 합작 공장(NUMMI)이었다. 테슬라는 이 공장을 2010년 도요타에서 인수했는데, 당시 도요타의 운영 인력과 노하우까지 받아들였다. 도요타 방식을 활용했던 테슬라는 2017년 모델3를 준비하면서 문제에 직면했다. 수많은 시행착오·개선을 반복하며 양산 일정도 앞당겨야 했는데, 재고를 최소화하는 도요타 방식은 시간이 너무 걸렸다. 또 공정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직원이 USB 메모리를 들고 공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작업으로 갱신해야 했다. 공정 개선 때마다 개별 소프트웨어 변경이 늦어지거나 먹통이 되기도 했다.

테슬라의 해법은 새로운 생산 시스템을 짜는 것이었다. 로봇 수천 대의 업데이트를 자동화하는 툴을 자체 개발했다. 이후로 테슬라는 몇 주나 몇 개월이 아니라 며칠, 하루 만에도 제조 라인 시스템 전체를 리셋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은 공장의 빠른 확장성으로도 연결된다. 운영 소프트웨어만 제대로 구축하면 공장이라는 하드웨어는 남들보다 빨리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테슬라 방식의 또 다른 강점은 생산 시스템은 물론 핵심 부품까지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다. 도요타처럼 부품업체에 맡기고 이를 공급망의 마법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테슬라가 원하는 빠른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핵심 부품을 내재화하면 제조 스피드가 빨라진다. 새로운 제품을 생산할 때 현장 팀은 수천 가지 세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부품을 외주로 돌리면 문제 해결을 위한 작업이 복잡해지고 부품사를 오가는 사이에 시간도 많이 걸린다.

◇ 기술 검증 부족과 AS 비용 증가 등은 과제

테슬라 제조 방식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가 프레스로 만들어진 일체형 섀시는 외부 충격으로 일부만 손상돼도 전체를 교환해야 할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선 한 모델Y 소유자가 차량을 후진시키다 벽에 부딪혀 오른쪽 뒷부분이 함몰됐는데, 수리 비용이 3800만원(20만위안) 청구됐다며 인터넷에 불만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테슬라의 신형 차체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특수 주조품이라 손상되면 수리가 불가능하고 새 부품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 테슬라는 앞으로 섀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알루미늄 주조품으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충돌 사고 시 교체 비용에 더 큰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또 오랜 기간 검증된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결함이 나오진 않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문가들 “이대로는 한국 전기차 제조 경쟁력 2류 될수도”]

테슬라의 ‘기가 프레스’와 공장 운영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진화 등 이른바 ‘테슬라 생산방식’의 약진은 향후 전기차 공장의 제조 혁신과 자동화 수준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발전해 나갈 것임을 보여준다.

테슬라가 특히 위협적인 것은 이미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구축했기에, 플랫폼을 얹을 디바이스(전기차)만 빨리 늘리면 되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제조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과 유지·보수·개선에 많은 인원과 기술·자금을 투입한다. 자원 대부분은 테슬라가 차량을 많이 팔든 못 팔든 반드시 투입해야 하는 비용이다. 테슬라는 차를 많이 팔수록 이 비용을 분산시킬 수 있어 이익이 늘어나며, 더 빨리 재투자할 수 있다.

이런 테슬라가 소프트웨어 분야뿐 아니라, 제조 분야에서조차 타사를 계속 앞선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3월 2일 현대자동차는 2030년까지 연간 187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하겠다고 밝혔는데, 테슬라는 이미 2023년이면 이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의 목표가 소극적이라기보다 테슬라의 증산 속도가 너무 빠르다.

반면 국내의 생산 혁신은 더디다. 전기차 업계의 한 생산기술 임원은 “국내 전기차 생산기술 혁신이 어려운 이유는 악성 노사 관계로 인해 공정혁신을 이뤄야 할 생산기술 엔지니어들조차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대로 가면 전기차 소프트웨어는 물론이고 제조 경쟁력도 2류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테슬라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전기차 제조 혁신에는 특히 소재·가공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 중견 금속가공업체의 한 임원은 “현대차는 물론이고, 포스코·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철강사도 기가스틸 등 철강 위주이기 때문에 전기차 제조혁신을 위한 신소재·가공기술을 복합적으로 구사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