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트럭으로 ‘제2의 테슬라’가 되겠다던 미국 니콜라는 최근 첫 양산에 돌입했다. 애리조나의 공장에서 트럭을 제조한다. 그런데 수소트럭이 아니라 전기트럭이다. 2020년 상장 후 시가총액 30조원에 육박했지만 ‘수소트럭 양산 능력이 전혀 없고 시제품이 사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창업자가 기소당하는 곡절을 겪었다. 결국 수소트럭 양산을 미루고 전기트럭을 올해 400대가량 생산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상장 2년 차인 니콜라가 지금껏 고객에게 인도 완료한 차량은 작년 말 전기트럭 시제품 2대가 전부다.

테슬라의 성공과 함께 전기차 붐이 일어나고, 전기차·수소차 스타트업들이 장밋빛 전망과 함께 최근 2~3년 사이 수조~수십조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전기트럭의 리비안은 유럽 최대 제조사 폴크스바겐, 또 다른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는 포드의 시가총액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전기차 업체들의 주가는 최근 고점 대비 반 토막, 심하게는 70% 이상 하락했다.

4일 각사의 공시자료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분석을 종합한 결과, 상장 전기차 업체 7곳 중 6곳이 상장 이후 고객 인도 차량 1만 대가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가총액 49조인 전기차 업체 루시드는 여태 고객에게 125대의 차량을 인도 완료했고, 피스커·어라이벌·카누는 ‘0대’다. 유일하게 중국기업 니오만 18만대가 넘는 차량을 고객에게 인도했다. 이들 회사는 최근 부품 공급난으로 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글로벌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이런 신생 전기차 업체들을 ‘콘셉트 주식’이라고 냉혹하게 평가했다. 전기차 사업에 대한 콘셉트만 있고 알맹이가 없다는 뜻이다.

◇꿈은 테슬라, 현실은 0대

미국 전기트럭 제조사 리비안은 지난달 올해 목표 생산량을 5만대에서 2만5000대로 축소했다. 로버트 스카린지 CEO는 “오미크론 변이로 인한 세계 각국의 셧다운, 반도체 공급난 등 여러 외부 요인으로 예상만큼 생산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리비안은 작년 11월 상장 이후 현재까지 총 2425대의 차량을 양산·인도했다. 리비안은 최근 부품 공급난에 차량 생산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차량 가격을 20% 올리려다가 예약 구매자들의 거센 반발에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하기도 했다.

영국 전기밴 제조업체 어라이벌은 지난달 올해 목표 생산량이 600대에 그칠 것을 밝히자 주가가 하루 사이 7% 떨어졌다. 아직 고객 인도 차량이 1대도 없는 이 회사는 막상 양산에 돌입하려고 하자 여러 암초를 만났다. 특히 갓 설립한 신생기업으로서는 제대로 된 부품 공급망을 구축하는 일이 예상보다 훨씬 버거운 것이다.

FT는 “시대를 초월한 진실은 자동차는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테슬라가 성공했다고 다른 업체들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평가했다. 신생 전기차 업체들은 이런 사실은 간과하고 높은 기업가치를 평가받는 데에만 주력하다가 이제야 그 높은 벽을 실감한다는 것이다.

◇완성차와 협력 등 살길 찾는 중

업체의 공시를 보면 상장을 통해 수십조 가치를 인정받았던 전기차 기업들은 기업마다 수조 원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리비안은 약 20조원, 루시드도 7조원, 피스커도 1조3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이 있다. 문제는 이 돈을 공장 건설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공장을 짓는다고 생산 노하우와 부품망이 자동적으로 구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신생 전기차 업체들은 기존 완성차 업체와 협업을 통해 생산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중국 업체 니오는 2018년 중국 완성차 업체 장화이자동차에 위탁생산을 맡겼다. 그해 상반기 6개월 동안 400대 차량을 생산한 니오는 현실을 빨리 깨닫고 양산 노하우가 풍부한 전통기업과 협업을 택했다. 이후 니오는 한해 수만 대 차량을 꾸준히 인도할 수 있게 됐다. 대만 폭스콘을 비롯해 독일 폴크스바겐도 이 시장을 노리고 고객이 주문하면 전기차를 대신 생산해주는 플랫폼을 내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부터 신생 전기차 업체들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것”이라며 “전기차 업체와 완성차 업체의 협업이 가속화되면서 경쟁력 있는 전기차 업체만 생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