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 시장에 쌍용차 인수발(發) 광풍이 불고 있다. 업체들이 쌍용차 인수를 내비치면 주가가 급등하고 개인 투자자들이 상승하는 종목에 올라타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런 움직임은 기존 M&A(인수·합병)를 둘러싼 공식과 정반대다. 작은 기업이 규모가 큰 기업을 인수할 경우 자금 조달 문제가 불거지며 오히려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쌍용차 인수 이슈가 투기 테마로 전락해 투자자들이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쌍방울그룹, 이엔플러스, KG그룹 등이 인수 의사를 내비치고 있지만 이들이 실제 본입찰까지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1차 매각 시도 때 자금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은 SM그룹(해운·중공업) 등이 인수의향서를 냈지만 본입찰에 나서진 않았다. 일각에선 현실적으로 인수 대금과 채권 변제 등 최소 5000억~1조원을 내는 게 버거운 기업들이 인수 의향을 내비치며 주가 부양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투기 테마 된 ‘쌍용차 인수’
최근 주식 시장에선 ‘쌍용차에 스쳐도 주가가 오른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 지난 1일 쌍용차 인수 의사를 처음 나타낸 쌍방울그룹의 경우 계열사 광림이 첫날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5거래일 동안 38.9% 오른 것을 비롯해 쌍방울 15.3%, 미래산업 13.8% 등 다른 계열사 주가도 일제히 올랐다. 6일 KG그룹이 쌍용차 인수전에 뛰어든다는 소식이 돌자 7일까지 KG동부제철(48%), KG케미칼(34.9%), KG ETS(28%), KG모빌리언스(12%) 등 계열사 주가가 급등했다.
거래량은 더 압도적이다. 지난 5일 쌍방울 관련주 거래량은 8억5466만주였다. 이는 코스피 전체 시장 거래량(9억9331만주)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 투자를 주도한 건 개인이다. 예컨대 쌍방울그룹의 인수 주체로 알려진 광림의 경우 1일부터 7일까지 외국인과 기관은 주식을 순매도 했지만, 개인만 151억원어치 주식을 샀다.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이 시세 조종 등 불공정거래 여부에 대해 살피겠다고 나섰지만, 주가를 올린 주체가 이들 기업이 아니라면 위법을 따지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률 회계사는 “기업들이 인수전에서 철수한다 해도 고의를 입증할 가능성은 적다”며 “피해는 고점에 주식을 산 개미들이 짊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인수 여부에 관련 없이 기존 투자자들은 상당한 시세 차익을 거두고 있다. 5일 광림은 전환사채(CB) 157만993주에 대한 전환청구권이 행사됐다고 공시했다. 회사 전환사채를 가진 기존 투자자들이 이를 주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전환가액은 1655원으로 5일 종가 4250원과 비교하면 1주당 2.5배가량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 이전 에디슨EV에 투자했던 투자자들 역시 대부분 차익을 실현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5월 30일 6개 투자조합은 에디슨EV 주식을 주당 1만4000원가량에 212만9957주를 샀다. 이 주식은 이후 6배가량 올랐다.
◇쌍용차 경쟁력 제대로 검증됐나
완성차 업계에선 치열한 전기차 시장의 생존 경쟁을 감안할 때 쌍용차 경쟁력이 더 철저하게 검증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벤츠와 BMW 등 글로벌 기업은 수년 내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하고 각각 50조원이 넘는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쌍용차는 통합형 운영체제(OS)와 OTA(무선업데이트) 등 소프트웨어나 전기차 전용 플랫폼 등 분야에서 국내외 기업과 비교해 경쟁력이 취약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력 구조 조정 등 민감한 사안이 논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도 리스크로 분류된다. 한 자동차 부품사 대표는 “쌍용차 인력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어느 기업도 제대로 회사를 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에디슨모터스 측도 인수 협상 시 근로자 고용 보장을 전제로 했고 인원 감축은 논의하지 못했다. 게다가 쌍용차 노조는 작년 기준 5600만원까지 삭감된 평균 임금을 인수가 완료되면 곧바로 복원시키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