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건축 추진을 준비하는 서울의 한 노후 아파트에선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두고 주민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전기차를 산 주민은 충전기업체의 무료 설치 제안에 반색했지만 일부 주민이 “집값이 떨어진다”고 반대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려면 변압기를 새로 들여야 한다. 수십 년 전 지은 노후 아파트 단지는 변압기 용량이 크지 않다. 지금도 전력 수요가 많은 여름철에는 관리사무소가 에어컨 사용 자제를 요청하고, 엘리베이터 홀짝제를 시행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자동차연구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공동주택 2만5312단지 중 세대별 설계 용량이 부족한 공동주택은 32%인 7921곳에 이른다. 여기에 최근 전기차라는 새로운 복병까지 등장했다.
변압기 용량을 큰 것으로 바꾸면 해결되지만, 문제는 재건축 승인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시설안전공단의 ‘아파트 재건축 안전 진단 매뉴얼’에 따르면, 전기 통신 시스템, 장비 및 배선 노후도 등이 재건축 진단 평가 항목에 포함된다. 변압기를 새것으로 바꾸면 시설 개선에 해당해 재건축 승인에서 감점 요인이 되는 것이다. 한 노후 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재건축은 집값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위해 변압기를 교체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전기차 차주 김모씨는 “충전기도 자연히 늘 것으로 보고 전기차를 샀는데, 아예 이사를 해야 할 판”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변압기 교체 비용도 주민들 사이 논란거리다. 5000만원가량 하는 공사 비용은 한전과 정부가 80% 부담하지만 20%는 주민 몫이다. 변압기 교체를 위해 전기차가 없는 주민까지 비용을 나눠 져야 하는 것이다. 장대석 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비용 부담 문제까지 겹치면서 기존 아파트에 충전기를 늘리는 데 상당한 진통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