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 배터리 2022’ 행사에서 LG에너지솔루션 부스에는 배달 가방이 달린 전기이륜차가 등장했다. 전시 담당자가 이륜차 좌석 밑에서 배터리팩 2개를 꺼내 충전 스테이션의 빈 곳에 꽂자, 충전이 완료된 다른 배터리팩 2개가 자동으로 분리됐다. 충전된 배터리 팩을 이륜차에 넣자 ‘충전 완료’ 표시가 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10초도 안 걸리는 교체식 배터리 충전으로 종일 주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전시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이륜차 충전 시장에 진출을 알렸다.

전기이륜차가 전기차를 잇는 새로운 차세대 먹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코로나 확산으로 배달·유통 관련 이륜차 수요가 크게 늘어난 데다, 막대한 소비 잠재력을 가진 인도·동남아에서는 전기이륜차가 고가 전기차의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기차 시장의 테슬라 같은 절대 강자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이륜차 전문 제조 업체들과 배터리 업체들이 치열한 시장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탈리아 스쿠터 제조사 피아지오가 출시한 전기 스쿠터 '베스파 일렉트로니카'. LG에너지솔루션의 이륜차 전용 배터리셀을 탑재했다. /피아지오

◇전기차 대안, 전기이륜차

전기이륜차 투자 붐이 가장 뜨거운 곳은 인도·동남아 지역이다. ‘인도의 우버’로 불리는 현지 최대 승차 공유 스타트업 올라는 ‘올라 일렉트릭 모빌리티’를 설립하고 전기이륜차 생산에 뛰어들었다. 지난해에는 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투자기관들로부터 2억달러(2450억원) 투자를 유치했고, 설립 5년 만에 기업 가치가 6조원에 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급성장의 원동력은 거대한 시장 규모다. 인도는 연간 이륜차 판매량 1500만대가 넘는 세계 최대 시장이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2030년이면 인도 전기이륜차 판매량도 1000만대에 달할 전망이다. 올라 일렉트릭은 인도에 연간 1000만대 전기이륜차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짓고 있다. 작년 말 전기이륜차 예약 주문을 온라인으로 받았는데 24시간 만에 주문 대수가 6만대를 돌파했다.

지난달 미 나스닥에 상장한 대만의 이륜차 업체 고고로도 단번에 6000억원(5억달러)을 조달하면서, 중국·인도·인도네시아의 전기이륜차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고고로는 인도네시아에 거점을 둔 동남아 최대 모빌리티 기업 고젝과 손잡고 지난해 말 전기이륜차 500대를 시범 도입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이륜차 판매량이 2020년보다 38% 넘게 성장해 500만대를 넘겼다. 고고로와 고젝은 2030년까지 인도네시아 이륜차를 모두 전동화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같은 이륜차 대국들은 대부분 평균 소득 수준이 1만달러 미만이다. 최소 4000만원대인 전기차를 구매하기 힘든 단계다. 이 때문에 인도·동남아 정부는 전기차 육성 계획을 펼치면서도 전기이륜차에 대한 보조금과 충전 인프라를 동시에 구축하는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국내 중소 업체들도 주행거리 늘려 출시

한국에서도 중소 오토바이 제조사들이 전기이륜차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블루샤크코리아는 전기이륜차 블루샤크 R1을 이달 출시할 예정이다. 통신칩을 탑재해 주행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고, 1회 충전 주행거리도 160km에 이른다. 모헤닉모터스도 올해 상반기 전기이륜차 팩맨을 출시할 계획이다. KR모터스는 현대케피코, LG에너지솔루션과 기술 협력으로 만든 ‘이루션’을 연내에 선보일 예정이다. 국내 이륜차 시장은 혼다, 야마하 등 일본 업체에 점유율 80%를 내준 상태지만, 토종 업체들은 전기이륜차 출시를 발판 삼아 시장점유율을 되찾겠다는 계산이다.

국내 업체들로서는 중국산 부품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고 품질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국내 중소 업체들이 내놓은 전기이륜차 대부분은 중국산 부품을 가지고 조립만 하는 곳이 많아 순수 국산 제품은 20%가량에 그친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오르막이 많은 환경에선 주행거리뿐 아니라 주행 성능에도 초점을 두고 전동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