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 시각) LG에너지솔루션은 인도네시아 국영 광산회사 안탐(ANTAM) 등과 배터리 공급 체인 구축 협약을 맺었다. 10조원을 투자해 원자재 채굴부터 배터리 양극재와 셀 제조에 이르는 거대한 배터리 체인을 만든다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LG의 최대 라이벌인 중국 CATL도 안탐과 대규모 공동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7조원을 투자해 배터리·전지재료·폐배터리 재생 공장을 짓겠다는 것이다. 중국 내 생산과 수주에 집중해온 CATL이 중국 밖으로 진격해 한국 배터리 업체와 전면전에 나섰음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인도네시아는 배터리 양극재의 핵심 재료인 니켈의 매장 및 채굴량 세계 1위 국가로, 동남아 전기차 시장의 핵심 거점으로 떠오르는 곳이다. 배터리 업계 고위 관계자는 “CATL은 지난해 순이익만 약 3조원으로 LG에너지솔루션의 3배였다”며 “중국 정부가 각종 보조금으로 작정하고 키운 배터리 업체들이 그동안 쌓아온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외 설비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밖으로 진격하는 中 배터리
K배터리의 텃밭 유럽도 중국에 공략당하기 시작했다. 현재 유럽에선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공장이 가장 많은 배터리를 생산·납품하고 있고, SK온과 삼성SDI도 헝가리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그런데 CATL이 하반기부터 독일 공장 가동에 들어간다. 2019년 착공한 CATL의 첫 해외 공장이다. 폴크스바겐과 벤츠·BMW 같은 독일 업체들이 발주를 늘리고, 최근 테슬라가 베를린 공장 가동에 나서면서 CATL의 유럽 내 역할이 커지고 있다. CATL은 최근 폴란드에도 공장 부지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유럽 내 ‘한중 전면전’이 불가피해졌다.
미 블룸버그는 최근 “CATL은 그간 미·중 갈등으로 투자가 조심스럽던 북미 지역에도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향후 전기차로 전환되는 1500만대 규모의 미국 자동차 시장을 노리기 위한 것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겉으론 중국을 싫어하지만, 배터리 공급이 워낙 부족해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진출을 막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CATL뿐만 아니다. 중국 3위 배터리 업체 궈시안은 미국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고 미국 합작 공장 설립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엔비전AESC도 벤츠와 미국에 배터리 합작 공장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10위권인 중국 EVE 에너지는 지난달 헝가리 데브레첸에 10조원을 투자해 2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원통형 배터리 공장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EVE에너지는 SK온이 중국 배터리 공장을 지을 때 합작했던 파트너사지만 이제 헝가리에 공장이 있는 SK온의 경쟁사가 된 셈이다.
◇中 비결은 저렴하고 효율 높은 ‘철 배터리’
중국 업체의 해외 시장 확대 비결은 중국의 주력인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가성비 배터리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LFP는 한국 업체들의 주력 상품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보다 무거워 에너지 효율이 낮은 것이 단점이었다. 하지만 매장량이 풍부한 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가격이 30%가량 저렴하다. 중국 업체들은 LFP 배터리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 개발에 매진해왔다. 배터리셀은 모듈로 조립된 뒤 대규모 팩으로 포장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모듈화’ 과정을 없애 같은 공간에 더 많은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는 ‘셀투팩(cell to pack)’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특히 니켈·코발트 값이 폭등하면서 완성차 업체들도 LFP 배터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테슬라는 이미 보급형 전기차 기본 모델에 LFP를 대거 적용하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 1분기 생산한 전기차 30만대 중 절반에 LFP 배터리를 탑재했다. 폴크스바겐·벤츠·BMW·현대차·포드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도 모두 LFP 배터리를 중저가 모델을 중심으로 탑재하겠다고 밝힌 뒤 중국 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있다.
한국 배터리 3사는 원가가 비싼 코발트를 줄이거나 없앤 코발트 프리 제품 등을 통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원자재 값 상승이 지속되면 ‘철 기반 배터리’ 사용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 업체인 트렌드포스는 2년 뒤인 2024년부터는 LFP가 삼원계 배터리를 추월해 전체 시장의 6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