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강변로/뉴시스

‘안전 거리 미확보 운행의 5%, 급정거 4%, 주행점수 85점. 보험료에 반영됩니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테슬라 차량을 모는 운전자들은 자동차 보험 갱신 때 이런 메시지를 받는다. 테슬라가 작년 10월부터 텍사스 등 5개 주(州)에서 보험 상품을 내놨기 때문이다. 차량에 설치된 카메라가 모은 운행 정보를 바탕으로 AI(인공지능)가 주행 습관을 점수화해 보험료를 최대 60%까지 할인한다.

테슬라가 도입한 보험 상품은 BBI(Behavior Based Insurance·주행습관 기반 보험)로 불린다. 그 바탕은 IT 기술이다. 주행 데이터를 모아 이를 클라우드 서버에 보내면 AI가 이를 분석해 점수로 환산하는 것이다. 운전자는 안전 운행을 할수록 보험료가 싸지고 보험사는 사고 감소로 손해율을 낮출 수 있어 서로 이득이다.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테슬라의 BBI 상품은 자동차 보험 업체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며 “테슬라가 미국 톱10 보험사에 오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자동차 보험이 진화하고 있다. 사고 유무, 운전 기간에 따라 보험료를 산정하던 1세대 보험이 주행 거리 같은 단순 주행 정보를 반영하는 2세대 보험으로 발전한 데 이어 최근엔 과속, 급제동, 휴대전화 사용 같은 주행 습관까지 고려하는 인슈어테크(insurance+tech)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도 뛰어든 BBI 상품

BBI 상품의 등장은 최근 급격히 확산하는 전기차 보급과 연관돼 있다. 전기차에 설치된 카메라, 라이다(Lidar) 등 운전 보조 장치들이 주행 데이터를 모으는 첨단 정보 수집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완성차 업체들이 주도적으로 BBI 상품을 내놓고 있다.

포드는 미 보험사 스테이트팜과 함께 차량 주행 변화에 따라 최대 40% 할인을 제공하는 상품을 운영 중이다. GM도 보험사 아메리칸 패밀리 인슈어런스와 공동 개발한 운전 데이터 기반 보험 상품을 올해 내놓을 예정이다.

BBI 상품의 최대 장점은 사고 감소 효과다. 미국 인슈어테크 기업 젠드라이브 분석에 따르면 BBI 상품은 운전자 습관을 개선해 사고 가능성을 49%나 감소시킨다. 사고가 났을 때 대처도 기존 보험보다 효율적이다. 실시간으로 사고 여부와 피해 정도를 감지해 목격자 신고 없이도 사고 발생 위치, 사고 영상 같은 데이터가 담당자에게 자동 전송된다. 사고 원인 규명뿐 아니라 접수, 보험금 지급도 기존 보험보다 배 이상 빠르다.

◇국내도 조만간 BBI 상품 출시

국내에서도 BBI 관련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인슈어테크 스타트업 카비는 GPS로는 잡아내지 못하는 안전거리 확보, 신호 위반, 차선 급변경 등 운전자 습관을 38개 항목으로 검토해 평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단순히 횟수만 세는 게 아니라 주행 맥락을 토대로 급가속 등을 평가한다. 전용 단말기를 통해 흡연이나 음주 여부도 감지하고, 교통사고 상황을 재구성한 화면도 볼 수 있다. 카비 측은 “대형 보험사와 상품화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에선 캐롯손해보험이 지난해부터 BBI 시범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차량에 장착된 디지털 기기를 통해 주행 거리, 급가속, 정속주행 등을 판독하고 주행마다 포인트를 지급한다. 이 포인트로 보험료를 결제하거나 온라인몰에서 상품을 살 수 있다. 캐롯손해보험은 올해 하반기에는 정식 BBI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다만 국내의 경우 개인 정보 수집과 취급이 민감한 문제여서, 보험업계는 아직 BBI 상품 도입에 대해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대형 보험사들은 일단 다른 회사의 상품 출시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내 자동차 보험은 90%에 달하는 손해율로 만년 적자 상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높은 손해율 구조를 깰 상품이 BBI가 될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법규상 근거가 미비해 보험사들이 디지털 기술과의 융합을 망설이고 있다”며 “보험업계에서도 혁신적인 상품이 나올 수 있도록 개인정보 활용과 관련해 과감한 규제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BBI(Behavior Based Insurance)

운전자의 연령이나 운전 경력뿐 아니라 실제 운행 시 과속이나 급제동, 휴대전화 사용 등 운전자의 주행 습관을 정보기술(IT)로 파악해 이를 보험료 산정에 반영하는 상품. 운전자가 안전 운행을 할수록 보험료가 낮아지고 보험사는 사고가 감소해 손해율을 낮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