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사려면 최소 6개월 전부터 계획을 세워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인기 많은 모델의 경우는 1년 이상 기다릴 각오를 하는 것이 좋다. 반도체 부족에 따른 완성차 업계 생산 차질이 일상화되면서, 차량 계약 후 출고까지의 대기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1년 전 구매했다면 5~6주만 기다리면 받을 수 있었던 기아 스포티지 가솔린 모델은 지금 주문하면 11개월 후에나 받을 수 있다. 이는 지난달 대기 기간(10개월)보다 더 늘어난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생산 속도가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백오더’(이월된 주문 물량)가 계속 적체되고 있다”며 “코로나 이전, 재고를 쌓아놓고 고객이 주문하면 즉시 출고해주던 시대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제 1년이 기본… 전기차는 최대 1년6개월
3일 본지가 신차 정보 플랫폼 겟차로부터 받은 ‘현대차·기아 5월 납기 정보’ 자료에 따르면, 이달 인기 모델을 주문할 경우 전반적으로 1년 안팎의 대기 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 싼타페(7개월), 제네시스 G80(6개월)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고, 아반떼(9개월), GV70(9개월), G90(10개월), GV80(11개월) 등은 모두 1년 가까이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기아 인기 모델인 K8(10개월), 쏘렌토(14개월), 카니발(14개월)은 더 심각하다. 올해 연말 완전 변경 모델이 나오는 그랜저도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신형 출시가 임박하면 구형 모델은 재고가 쌓여 할인 판매를 해왔지만 이제 그것도 옛날이야기”라고 말했다.
반도체난 초기였던 작년 5월만 해도 대부분의 차들은 1~2개월 정도 기다리면 받을 수 있었다. 인기 모델은 길어야 3~4개월, 최대 6개월 정도 걸렸다. 그때 가장 오래 기다려야 했던 차종은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신형 쏘렌토로 6.5개월이었다. 하지만 이제 “인기 차종은 빨라야 6개월, 기본 1년 안팎”이 평균이 되어가고 있다. 카니발(디젤 기준)의 경우 한 달 새 대기 기간이 11개월에서 14개월로 늘었다.
특히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는 주문하면 최소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현대차 전기차 아이오닉5, 아반떼·투싼·싼타페 하이브리드는 12개월, 기아 전기차 EV6, 스포티지·쏘렌토 하이브리드는 18개월이 걸린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는 더 많은 반도체가 들어가는 데다, 생산설비도 충분치 않아 대기 기간이 더 길다”고 말했다.
◇반도체난 끝나기는 할까
2020년 12월 본격화된 반도체 수급 문제는 1년 반째 지속되고 있다. 올 초 현대차는 작년 실적 발표에서 “올 2분기부터 반도체 공급난이 점진적으로 완화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최근 들어서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가 더 많다. 아르노 안틀리츠 폴크스바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2024년에도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자식 편의사양은 늘어나는데, 반도체 업계는 구형 반도체인 8인치 웨이퍼를 주로 쓰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 설비 투자를 크게 늘리지 않고 있다. 또 업체별로 주요 반도체를 1년치씩 미리 확보해놓는 ‘가수요’까지 발생하며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은 최근 반도체 생산량을 기존보다 2배 이상 확대할 수 있는 12인치 생산라인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자동차 업계 고위 관계자는 “설비 투자 기간을 감안하면 12인치 생산라인이 본격 가동되는 2025년은 되어야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