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구매를 고려 중인 임모(38)씨는 차량 구매 기준으로 전비(전기 연비·kWh당 주행거리)를 따지기 시작했다. 이는 임씨가 사는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기 10대가 추가로 설치되면서 충전 부담이 줄어든 탓에 1회 충전 시 주행거리 외에도 차량별 전비까지 비교하는 것이다. 임씨는 “충전 부담이 줄어드니 비용 문제가 다시 1순위가 됐다”며 “물가가 오르고 부동산 대출 이자 등으로 부담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최근 전기차 전비(電費)에 관심을 두고 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에 따라 차량 가격 등 물가가 치솟고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늘어나자 주머니 사정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전비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현재 전기차 차주들은 오는 7월 만료되는 전기차 충전요금 특례 할인 제도를 통해 기본 요금의 25%, 사용 요금의 10%를 할인 받고 있다. 문제는 국제 유가가 100달러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앞으로 전기료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전은 1분기 7조8000억원 영업손실을 내자 전기차 요금 할인 특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비왕은 테슬라, 꼴찌는 벤츠 EQA
전비는 내연기관차에서 쓰는 연비의 개념을 전기로 대신한 것이다. 연비는 ℓ당 주행거리(㎞)를 나타내지만 전비는 1kWh 당 주행거리(㎞)로 표시된다. 1kWh는 스마트폰 50대를 완전히 충전하는 에너지양이다.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성능, 차량 무게, 히트 펌프 같은 온도 제어 기술이 전비에 영향을 미친다. 같은 차종에서도 휠이 작고, 모터 등 구동 제품이 적은 후륜 차량이면 전비가 높다.
환경부의 전기차 전비 자료에 따르면 국내 출시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 중 전비 1위는 1kWh에 5.8㎞의 주행이 가능한 테슬라 모델3(스탠더드 레인지 플러스)다. 이 차량은 1회 충전 시 363.9㎞를 달릴 수 있다. 2위는 5.5㎞를 기록한 기아 EV6(스탠더드 2WD 19인치), 3위는 5.4㎞를 기록한 테슬라 모델3 롱레인지로 나타났다. EV6(369.5㎞)와 모델Y(491.7㎞)의 주행거리는 1위 차량인 모델3보다 더 길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 용량을 키우면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늘지만 차체 무게가 늘어나 전비가 떨어진다”고 했다. 실제 테슬라 모델3의 무게는 EV6, 모델Y보다 가볍다. 준중형, 소형 차량인 한국GM의 볼트 EUV(5.1㎞), 제네시스 GV60(5㎞), 쌍용의 코란도 e-motion(4.7㎞) 르노 조에(4.5㎞) 등도 준수한 수치를 나타냈다.
반면 벤츠 EQA와 BMW iX3는 3.8㎞를 기록해 최하위를 기록했다. 특히 벤츠 EQA는 BMW ix3보다 1회 충전 주행거리가 50㎞가량 짧음에도 다소 낮은 전비를 기록했다. 환경부, 한국에너지공단은 각 전기차 업체에서 전비 신고를 받은 뒤 자동차안전연구원을 통해 신고된 전비가 실제 측정치와 일치하는지 검증한다.
◇회생 제동 이용할수록 전비에 유리
화석연료를 쓰는 내연기관차는 정지와 출발을 반복하고 제한 속도가 낮은 시내 주행보다 정속으로 달리는 고속도로 주행이 연비에 도움이 된다. 일정 속도 이상을 내어야 엔진의 회전력을 이용해 동력을 전달하는 변속기 활용을 통해 연비가 더 높아진다. 그러나 전기차는 변속기가 없고 모터의 회전수가 속도에 비례하기 때문에 속도가 오르는 고속도로 주행에서 전비가 오히려 더 낮다.
전기차 전문가들은 사용자들이 ‘회생 제동’을 이용할수록 전비가 향상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내연기관차는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도 관성에 의해 속도가 유지되다 서서히 줄어들지만, 전기차는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속도가 급속도로 줄어든다. 이때 모터가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반발력을 통해 전기가 만들어지는 게 회생 제동이다. 사용자 입장에선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 조종을 통한 회생 제동이 잦을수록 전기를 효율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셈이다.
배터리 사용 습관도 중요하다. 배터리 잔량이 20% 이하로 내려가는 방전이 잦을수록 배터리 수명이 짧아진다. 또한 고온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거나 급속 충전을 많이 해도 성능이 떨어져 전비가 감소하게 된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차 전비는 충전 습관에 따라 달라지는 배터리 성능과 회생 제동 등 주행 습관에 따라 큰 격차가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