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올 들어 4월까지 전기차 판매 상위 10위 중 9곳이 중국 토종 브랜드인 것으로 집계됐다. 그동안 중국 자동차 시장은 독일·미국·일본 자동차 브랜드의 각축장이었지만 새롭게 떠오르는 전기차 시장에선 중국 브랜드들이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 소재부터 각종 전기차 부품까지 공급망을 완성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거대한 내수 시장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본격화할 경우, 기존 글로벌 자동차 시장 질서를 크게 흔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브랜드, 전기차 시장 장악
올해 1~4월 중국 전체 자동차 시장에선 폴크스바겐·도요타·GM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나란히 1~3위를 차지했다. 10위권 내에 든 중국 업체는 BYD(5위)·지리(6위)·창안(7위)·창청자동차(9위)로 4곳이었고 나머지는 혼다(4위)·닛산(8위)·BMW(10위) 같은 해외 업체들이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에선 판세가 완전히 뒤집혔다. 중국 BYD가 전기차 39만대를 팔아 3위인 테슬라(11만대)를 압도했다. BYD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기차와 배터리를 동시 생산하는 기업으로 시가총액이 테슬라·도요타에 이어 셋째로 높다. 2위인 상하이GM우링은 합작사인 GM 브랜드 차가 아니라, 우리 돈으로 500만원 정도인 경차 ‘훙광미니EV’를 자체 개발해 중국 젊은층에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내연기관차로 중국 내수에서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온 현지 업체들도 단숨에 상위권에 진입했다. 4위 체리자동차, 5위 광저우자동차 산하 브랜드 광치아이안, 6위 지리자동차가 전기차 전환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을 따돌린 것이다.
최근 강력한 코로나 봉쇄 조치가 취해진 중국은 올해 자동차 판매(1~4월)가 전년 동기 대비 12% 급감했다. 하지만 신에너지차(전기차·수소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판매는 전년 동기의 2배인 149만대로 급성장했다.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5%에 달했다. 중국 정부는 2035년 신에너지차 비율을 50%까지 확대할 계획으로, 향후 중국 현지 업체들의 부상은 더 두드러질 전망이다.
◇첨단 기술 확보에 공급망까지 장악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선전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나 ‘궈차오(国朝)’로 불리는 중국인들의 애국 소비 열풍 때문만은 아니다. 소비자들 취향을 섬세하게 고려한 첨단 기술을 발 빠르게 적용하고, 최신 배터리 기술로 효율을 높인 것도 핵심 비결이다. 특히 스마트폰 앱으로 문을 열고 음악을 켜는 것부터 차 안에서 알리페이와 타오바오 쇼핑몰을 연결하는 것 등 스마트 기술에서 오히려 앞서 있다는 평가다.
실제 BYD의 인기 모델 ‘진 프로EV’를 보면, 테슬라처럼 중앙 터치패드만으로 거의 모든 기능이 작동되는 것은 물론, 터치패드가 가로세로로 회전도 한다. 중국 소비자들 요구를 세심하게 반영한 것이다. BYD는 최근 테슬라 모델3와 경쟁하기 위한 차세대 전기차 ‘실(Seal) 세단’을 출시해 업계를 긴장시켰다. 이 차는 세계 최초로 배터리셀을 하나의 팩으로 만들지 않고 차체 내 곳곳에 채워넣는 ‘셀 투 섀시’ 기술이 적용됐다. 완충 시 주행거리는 550㎞, 가격은 약 3600만원으로 5000만원이 넘는 테슬라 모델3에 비해 깜짝 놀랄 정도로 저렴하다.
중국 신흥 전기차 업체 샤오펑은 테슬라에 버금가는 OTA(무선 업데이트) 기술을 자랑한다. 샤오펑은 테슬라로부터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당하기도 했지만 업계에선 “테슬라가 우려할 만큼 기술력이 상당 수준 올라왔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중국의 더 많은 신흥 강자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위협적이다. 지난 4월엔 ‘립모터’라는 전기차 업체가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빅3(샤오펑·니오·리오토)를 제치고 판매 1위(9087대)를 기록했다. 립모터는 세련된 디자인의 중형 세단과 SUV를 잇따라 출시해 주목받았고, 최근엔 셀 투 섀시 기술을 적용한 신차 ‘립모터 C01′을 선보였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은 전기차 서플라이체인(공급망)을 완벽하게 구축한 상태로,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다”며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을 동시에 갖추면서 세계 자동차 업계에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