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의 전기차 제조사 리막은 “골드만삭스와 소프트뱅크로부터 5억유로(약 670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고 1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인정받은 리막의 기업 가치는 20억유로(약 2조6600억원). 앞서 독일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말 수퍼카 브랜드 부가티를 떼어내 리막에 경영과 신차 개발 일체를 맡겼다. ‘부가티-리막’이라는 합작사를 세우는 형태였지만 리막 지분이 55%에 달해 사실상 리막의 자회사나 다름없다.
이뿐 아니다. 포르셰와 현대차그룹은 리막의 핵심 주주이며, 메르세데스 벤츠·르노·재규어랜드로버도 리막과 협업을 하거나 리막의 기술과 제품을 쓰고 있다. 자동차 산업 불모지인 크로아티아의 회사가 전기차 미래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떠오른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이 회사가 양산한 차량이 200대가 채 되지 않고, 직원 수도 1000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올해 34세인 창업자 마테 리막이 2009년 집 차고에서 설립한 이 작은 회사가 전 세계 자동차 회사뿐 아니라 투자자들로부터 끊임없는 구애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동차의 물리적 한계에 도전하는 하이퍼 전기차
리막은 페라리·포르셰 등으로 대표되는 수퍼카보다 한 단계 위 성능을 가진 이른바 ‘하이퍼카’를 만든다. 그것도 전기 하이퍼카다. 리막이 개발한 전기차 ‘네베라’는 1914마력(마력은 말 한 마리가 1초 동안 할 수 있는 일의 양)에 최고 시속 412㎞, 충전시 주행거리 550㎞ 등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자동차가 낼 수 있는 물리적 성능의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 가격이 30억원에 달하고 수작업으로 150대 한정 생산된다.
생산 대수가 적은 대신 리막은 고성능 전기차용 핵심 기술과 부품을 주요 양산차 기업들에 파는 형태로 비즈니스를 한다. 예컨대 리막은 20분 만에 충전을 마칠 수 있는 800V 초고속 충전 기술을 개발해 네베라에 탑재했는데, 이 기술은 포르셰(타이칸)와 현대차그룹(아이오닉5·EV6)의 전기차에도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리막이 만든 고성능 배터리 팩과 소프트웨어는 애스턴 마틴·코닉세그 같은 수퍼카 제조사와 재규어랜드로버·세아트의 전기차에 탑재된다. 벤츠와 르노도 리막의 협업 파트너다.
전 세계 전기차에 녹아들고 있는 이 같은 기술과 노하우를 주도적으로 개발한 주인공은 ‘유럽의 일론 머스크’라 불리는 사장 겸 엔지니어인 마테 리막이다. 리막의 창업은 미국 테슬라(2003년)보다 6년 늦었지만, ‘초고성능 전기차를 만들면,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기차 차체와 배터리·구동계를 직접 설계·디자인했다. 전기차 대중화를 목표로 했던 테슬라와 달리 처음부터 초고성능 전기차 기술에 집중한 것이다.
◇유럽의 일론 머스크, 열여덟 살에 세계 최고속 전기차 만들어
1988년생인 리막은 3세 때 유고 내전을 피해 가족과 고향 크로아티아를 떠나 어린 시절을 독일에서 보냈다. 12세 때 크로아티아로 돌아온 그는 어릴 때부터 특출한 발명 재능을 보였다. 17세에 키보드와 마우스를 대체할 수 있는 장갑, 사각지대를 피하는 사이드미러 시스템을 만들어 국제 특허 2개를 출원했다. 그 다음해엔 구형 BMW 3를 전기차로 개조해 레이싱 대회에 나가 우승했다. “경기장에 세탁기를 갖고 나왔다”는 조롱을 들었지만 국제자동차연맹으로부터 ‘세계에서 제일 빠른 경주용 전기차’로 인정받았다.
대학에 진학한 그는 창업을 위해 학교 측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크로아티아에서 자동차 기업은 성장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리막은 2009년 빚을 내 전기차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포르셰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아 숨통이 틔었다.
리막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토머스 에디슨과 함께 ‘전기의 아버지’라 불리는 크로아티아 출신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다. 그는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면, 회사 이름을 테슬라로 했을 것”이라며 “머스크는 세계 전기차의 표준을 만들었지만 리막은 테슬라보다 더 빠르고 성능 좋은 전기차를 만드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