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가 선택한 '라이다' 시스템 - 이한빈 서울로보틱스 대표가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본사 차고에서 라이다를 들고 있는 모습. 서울로보틱스는 라이다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기반으로 공장을 비롯한 시설 안 차량이 자율주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기술의 첫 번째 고객이 독일 BMW다. /오종찬 기자

“BMW 최대 공장인 독일 뮌헨 인근 딩골핑 공장에 오는 3분기부터 서울로보틱스의 자율주행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이 공장에서 매일 생산하는 1000여 대의 차량을 자율주행으로 적재 장소까지 운송하게 됩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만난 서울로보틱스의 이한빈(31) 대표는 “딩골핑 공장 프로젝트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이라며 “예정대로 BMW 전 세계 공장에 도입되면 계약 규모가 연간 1000억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 50명에 불과한 한국 자율주행 스타트업이 세계적 기업의 생산 시스템 전체를 바꾸는 혁신 기술을 납품하게 된 것이다.

이 회사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생산 시설 곳곳에 위치하는 150대의 라이다(LiDAR·레이저로 사물의 위치를 가늠하는 장치)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이 핵심이다. 이를 기반으로 공장에서 반출하는 모든 차량을 자율주행으로 적재 장소로 이동시킨다. 기존 공장에선 완성된 자동차를 반출하기 위해 사람이 운전했지만, 이 시스템이 도입되면 사람 없이 차량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공장뿐 아니라 수출을 위해 차를 실어나르는 항만이나 물류센터 등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서울로보틱스는 2017년 도로를 달리는 차량에 직접 탑재되는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출발했다. 라이다를 통해 정보가 들어오면 사물의 정밀한 위치·속도·방향을 파악하면서 차량·사람 등을 구분해주는 소프트웨어였다. 메르세데스 벤츠·BMW·볼보 등에 기술을 납품해 기대도 모았다. 하지만 기대한 만큼 수익이 나질 않았다. 이 대표는 “자율주행 3~4단계(현재는 2단계 수준)를 타깃으로 하고 개발했는데 완성차 업체들의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점이 여러 사정으로 2026년 이후로 밀렸다”며 “적자를 감수하면서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고 했다.

서울로보틱스가 찾은 새로운 시장은 공장·항만 등에서의 자동차 운반 시장이었다. 이 대표는 “전 세계 4000여 곳 자동차 공장은 시설 내에서 자동차 운반을 위해 평균 300명을 고용하고, 공장은 연평균 인건비로 200억원을 쓴다”며 “이 시장만 27조원 규모”라고 말했다. 게다가 안개·비·눈 같은 자연환경을 이겨내면서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용 라이다와 달리 공장 내부에 설치된 라이다는 방해 요인도 적다. 라이다 가격도 5년 전 대당 약 1억원에서 현재 250만원 수준으로 저렴해졌다. 기존 자율주행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은 것이다.

BMW는 이런 서울로보틱스 기술의 가능성과 경쟁력을 먼저 알아보고, 2019년부터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이 대표는 “우리 소프트웨어는 오차 범위가 4㎝ 내외로 100대가 넘는 라이다가 보내주는 정보를 동시 분석하고, 70여 종 라이다 제품과 호환된다”며 “경쟁 업체의 경우 동시 분석은 10대, 호환 제품도 1~2종 수준”이라고 했다.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기계공학과)를 나온 이한빈 대표는 군 복무 후 자율주행 온라인스터디그룹을 꾸렸고, 2017년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대회에 참가해 라이다 부문 1위·전체 10위를 했다. 그는 “미국 기업으로부터 연봉 6억원 입사 제안도 받았지만 한국에서 기업을 세우고 싶었다”며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창업 불모지인 한국에서 창업하면 투자가 어려울 수 있다’고 할 때마다 오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투자업계가 평가하는 서울로보틱스의 현재 기업가치는 4000억원. 서울로보틱스는 한국 기술 스타트업 최초 나스닥 상장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처음부터 사명(社名)에 ‘서울’을 넣었다. 이 대표는 “BMW뿐 아니라 글로벌 물류 시장 전체를 타깃으로 삼겠다”며 “세계 무대에서 한국 기술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증명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