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33)씨는 최근 전기차인 BMW iX3를 계약한 뒤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전기차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서울~인천 출퇴근 거리가 왕복 100km 정도 된다”며 “가격은 전기차가 동급 내연기관차보다 1000만원 넘게 비싸지만, 고유가 시대에 몇 년만 타면 전기차가 더 쌀 거 같다”고 했다.
기름 값이 뛰면서 상대적으로 연료비가 싼 전기차를 고려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한 올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 4월까지 3만4392대로, 작년 같은 기간(1만3159대)보다 2배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전기차 가격도 원자재·부품 수급 문제 등으로 덩달아 뛰고 있다. 테슬라는 수시로 가격을 올려 모델3 스탠더드(최하위 모델)가 6699만원으로, 작년 2월(5479만원)보다 1220만원 올랐다. 보험료도 전기차가 더 비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기차의 평균 보험료는 94만3000원으로 내연기관·하이브리드차(非전기차)의 평균 보험료 (76만2000원)보다 18만1000원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전기차 차량 가격이 비싸고, 배터리 등 부품 수리비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과연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저렴할까. 본지가 차량 가격·연료비·보험료·자동차세 등을 고려해 전기차와 비(非)전기차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를 조사해봤다.
◇연 2만km 타면 6년, 1만km는 13년 타야 본전
비교 차종은 같은 모델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가 모두 출시된 기아 ‘니로’를 대상으로 했다. 최하위 트림(세부 모델)부터 최상위 트림 가격 평균을 구하고, 전기차는 보조금(서울시 기준)을 가격에서 뺐다. 이렇게 계산하면 니로 전기차(EV)가 3987만원, 니로 하이브리드(HEV)가 2954만원으로 전기차가 1033만원 비싸다.
연료비는 연간 2만km를 주행할 경우 니로 EV가 연 52만원 든다. 하이브리드차는 연 210만원(연비 리터(L)당 19km)이다. 전기차를 탈 경우 매년 연료비를 158만원 정도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1만km 주행을 할 경우엔 이 격차는 79만원으로 줄어든다. 전기차 충전 요금은 주택·공공시설에 주로 설치된 완속 충전기를 70%, 급속 충전기를 30% 사용했을 경우를 가정한 금액이다. 완속 충전 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급속 충전기를 주로 사용하는 전기차 오너는 충전비가 더 들 수 있다.
자동차세·보험료(금감원 평균)를 종합하면 연간 2만km를 주행할 경우 니로 전기차가 하이브리드차보다 연간 155만원, 1만km를 주행할 경우 76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 따라서 연 2만km 주행 시 6년 6개월 이상 타면 비싸게 주고 산 전기차 금액(1033만원) 이상으로 유지비를 아낄 수 있다. 하지만 연간 1만km 주행할 경우에는 13년 6개월 이상을 타야 전기차가 더 싸게 먹힌다.
◇배터리 교체·수리비 비싸, 꼼꼼히 따져야
같은 방식으로 테슬라 모델3와 BMW 3시리즈 가솔린 모델(320i)을 비교해봤다. 각 사의 대표 엔트리(가성비) 동급 모델이다. 차를 구입할 때는 테슬라 모델3가 320i보다 1306만원가량 비싸지만, 2만km 주행 시 3년 10개월 이상 운행하면 테슬라 모델3가 더 저렴해진다. 1만km 주행 때는 7년 4개월 이상 타야 한다. 가솔린 모델(리터당 11km) 연비가 하이브리드차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슬라는 가격이 수시로 오르고, BMW는 비정기적인 딜러사 할인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가격 대비 성능과 관계없이 전기차를 고르는 이들도 있다. 제조사들이 전기차에 첨단 기술을 탑재하고, 기존 내연기관·하이브리드차와 디자인·성능이 차별화된다는 이유다. 친환경을 생각해 전기차를 고르는 소비자도 있다.
전문가들은 가격과 유지비를 고려하는 소비자라면 전기차 구매 시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충식 카이스트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 수명과 교체 비용, 고장 시 수리비까지 생각하면 전기차 유지비가 예상보다 더 들 수 있다”며 “가성비를 우선으로 따지는 소비자는 본인의 주행거리와 습관 등을 고려해서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