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레벨2 자율주행으로 인한 교통사고 통계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라 불리는 레벨 2 자율주행은 차선 유지와 이탈 방지, 앞차와 간격 유지 및 속도 조절, 충돌 방지와 차선 변경까지 컴퓨터가 수행한다. 미국 테슬라는 오토파일럿, 현대차는 HDA라는 이름으로 최근 3~4년 사이 출시된 차량 대부분에 탑재돼 있다.

NHTSA는 작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10개월간 사고를 조사한 결과, 총 392건의 교통사고가 레벨2 자율주행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밝혔다. 자율 주행 기술 탑재에 가장 적극적인 테슬라 차량에서 가장 많은 273건의 사고가 발생했고, 다음이 혼다(90건)였다. 현대자동차는 단 1건이었다. 하지만 자율주행 상태인지 여부가 애매한 상황까지 합치면 실제 사고 건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관측된다.

NHTSA가 조사에 나선 건 상용화된 레벨2 자율주행 기술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아직 완벽하지 않은데 운전자가 ADAS를 과신한 나머지 긴장을 늦춰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도 최근 기사에서 “테슬라 ADAS(오토파일럿)를 쓰는 운전자는 실험실 속의 기니피그”라고 썼을 정도다. 이번 발표는 그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인 셈이다. 미국 당국은 지난해 레벨 2 자율주행 사고 시 제조사 보고를 의무화했다.

◇미국 교통사고 사망자 16년만의 최고치

미국은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4만2951명으로 1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과 비교해도 한 해 사이 무려 10.5%나 증가했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이 ADAS다. ADAS가 탑재된 차량은 고속도로 등 제한된 환경에서 핸들에 손을 올리고 있으면 차량이 알아서 도로를 달린다. 이 때문에 운전자가 긴장을 늦추는 부작용이 지적돼 왔다. 실제로 각종 소셜미디어에는 ADAS를 켜놓은 채 차 핸들에 손을 올리고 자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운전자 사진들이 계속 올라온다.

특히 ‘오토파일럿’이라는 ADAS 기능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온 테슬라는 자율주행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여론의 표적이 돼왔다. 테슬라는 이에 맞서 “ADAS가 더 안전하다”며, 작년 4분기 테슬라 ADAS를 사용 중 일어난 사고는 694만㎞마다 1건에 불과하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놨다. 사고 빈도가 78만㎞당 1건인 일반 차량보다 오히려 낮다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이를 앞세워 “테슬라 오토파일럿은 (사람이 운전하는) 다른 차량에 비해 10배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 버지니아주 교통국의 최근 연구 조사 결과는 다르다. ADAS 대부분은 고속도로에서 사용되는데, 고속도로가 일반 도로보다 사고 확률 자체가 낮다는 것이다. 이를 보정해 확률을 계산하면 2020년 4분기 기준 테슬라 ADAS는 1억 마일(1억6000만㎞)당 46.8건, 사람이 운전할 경우는 49.5건 사고가 예측됐다. 사람과 ADAS의 사고 확률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NYT “당신은 실험실의 기니피그”

NYT는 이달 초 ADAS를 지나치게 과신하는 운전자들을 ‘기니피그’(실험동물로 자주 사용되는 설치류)에 빗댔다. 아직 자율주행 기술과 사고 연관성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고, 제조사들이 데이터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안전성과 위험성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은 라이다와 레이더 없이 카메라에 의존한다. 카메라는 비·눈·안개 악천후에 사물을 파악하는 성능이 취약하다. 컴퓨터가 예측하지 못하는 변수에 대응하는 것도 아직 부족하다. 2020년 대만에서는 테슬라 모델3가 전복돼 누워있는 트럭 트레일러를 인식하지 못해 정면으로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에서 완전 자율주행 택시를 상용화하겠다고 하지만 실상을 보면 비나 눈이 오면 운행 금지고, 비가 거의 오지 않고 날씨가 맑은 지역에서 주로 운행한다”며 “자율주행 기술이 아직은 운전자가 핸들을 놓고 차를 맡길 정도의 안전성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