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전기차 가격의 가파른 인상은 정신이 아찔할(dizzlying) 정도다.”

미국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는 최근 테슬라·GM·포드 등 미국 주요 자동차 회사의 잇따른 전기차 가격 인상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요약했다.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주요 모델의 미국 시장 가격을 2500~6000달러 올렸다. 전기차 1등 테슬라의 가격 인상이 시장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다른 자동차 회사의 전기차 가격도 무서운 속도로 오르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전기차 제조사, 가격 인상 경쟁

GM은 지난 17일 허머EV 가격을 6250달러(약 807만원) 올리겠다고 밝혔다. 8.5% 인상률로 차량 가격은 8만달러에 육박하게 됐다. GM은 “부품 가격, 기술 로열티, 물류비 등이 모두 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드의 전기차 머스탱 마하E도 지난 4월 최대 8000달러를 올렸다. 전기차 회사 리비안이 지난 3월 가격을 18%가량 올렸다가 소비자 비난이 폭주한 일도 있었다. 현대차도 배터리 용량을 늘린 최신 전기차 모델 2023년형 아이오닉5를 영국에서 가장 먼저 출시하면서 프리미엄 트림 기준으로 가격을 5% 정도 올렸다.

미국 자동차데이터 회사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5월 기준 미국 시장의 전기차 평균 가격은 6만4338달러(8310만원)로 1년 전보다 14.6% 올랐다. 전체 차량의 평균 가격이 4만7148달러(6090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전기차는 약 27% 비싸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 미국의 전기차 가격 인상 흐름은 곧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전기차 가격의 도미노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대중화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배터리 가격 2026년까지 계속 올라

머스탱 마하E는 포드의 대표 전기SUV다. 하지만 최근 전기차의 수익성에 대한 경고음이 켜졌다. 존 라울러 포드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지난 16일 “마하E를 처음 내놓은 2020년에는 수익이 났지만, 지금은 부품 가격 인상으로 (차를 팔아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리튬·니켈 등 배터리 원자재 비용도 오른 데다 반도체를 비롯한 글로벌 부품 공급망까지 흔들리면서 비용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기차 제조 비용의 30~40%가량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은 2026년까지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CNBC는 미국 배터리 시장조사 업체를 인용해 현재 kWh(킬로와트시)당 배터리 가격이 2023년 110달러에서 2026년에는 138달러까지 약 25%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배터리 가격 인상분만 고려하더라도 전기차는 최소 1500달러(190만원)에서 최대 3000달러(390만원)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전기차 생산 비용 절감이 생존 전략

제조사들은 배터리를 제외한 다른 전기차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술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포드 짐 팔리 CEO는 최근 “아예 마하E를 재설계해 비용을 줄이고 있다. 추후 이 기술을 다른 전기차에도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차량에 들어가는 호스·모터 등 주요 부품 수와 크기를 50% 이상 줄이고, 배터리 냉각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 부품 조달비를 줄이겠다고 했다.

평균 3000억~4000억원가량 드는 차량 개발 기간도 단축해 비용을 줄이겠다는 계산이다. GM의 허머EV는 개발 기간이 18개월이다. 평균적인 차량 개발 기간인 4~6년의 절반 이상을 줄였다. 연구용 모델의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운행을 테스트하는 방식으로 개발 기간을 줄였다.

전기차 공정 자동화에도 수조원이 투자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주요 전기차를 생산하는 츠비카우 공장에 12억유로(약 1조7000억원)를 투자해 최첨단 로봇 1600대 이상을 설치하고, 일부 공정 자동화율을 90%까지 끌어올렸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 제조사들은 내부적으로 2026년까지 전기차 제조 비용의 30% 감축 목표를 잡고 있다”며 “앞으로 승부처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기차 제조 비용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