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배터리 수명 점수는 82점, 급속 충전 비율을 낮춰보세요.”

전기차 운전자 김모씨는 차량을 운행하거나 배터리를 충전할 때 스마트폰으로 이런 메시지를 받는다. LG에너지솔루션이 제공하는 배터리 관리 시범 서비스 ‘B-라이프케어’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스마트폰 앱으로 배터리 잔존 가치, 완속과 고속 충전 비율, 전비, 관리 순위 같은 배터리 이용과 관련한 다양한 수치뿐 아니라 배터리 수명을 늘리는 노하우도 전달받는다. 차량에 별도 단말기를 부착하면 AI(인공지능)가 배터리 상태 등을 분석해 사용자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전기차 확산에 따라 전기차 차주에게 배터리 상태와 잔존 수명 등을 진단하고 알려주는 ‘배터리 관리 서비스(BAAS)’가 배터리 및 완성차 업계의 신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으로 주행 습관, 충전 이력 등에 따라 수명이 크게 좌우된다. 배터리 관리 서비스는 김씨 같은 차주 입장에선 중고차 가격 방어에 필수적이다. 서비스 제공 기업들로선 배터리 성능 진단·관리는 폐배터리 재활용 등 연계 비즈니스로 가는 첫걸음이다.

◇배터리 관리업 뛰어드는 기업들

지난달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배터리 관리 서비스 제공을 위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현실의 전기차와 배터리를 디지털 세계에 쌍둥이처럼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과 그 활용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디지털 세계에서 차주의 미세한 배터리 사용 습관까지 적용한 가상 주행 실험을 진행해 더 정확한 수명 예측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활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SK온은 지난해부터 배터리 관리 서비스 ‘바스 AI’를 운영하고 있다. 차량에서 수집된 정보를 AI가 분석한 후 배터리 수명을 진단하고 관리를 위한 효율적 충전 습관 등도 알려준다. 해외에선 독일 폴크스바겐이 배터리 상태를 진단하는 ‘배트맨(BattMan)’ 기기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색상을 통해 배터리 상태를 알려주는 시스템으로 녹색은 정상, 노란색은 검사 요구, 빨간색은 고장을 뜻한다.

배터리 관리 서비스는 폐배터리 활용 등 연계 산업으로 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SK온 관계자는 “2~3년 내 전기차 폐배터리 활용이 화두가 될 것”이라며 “배터리에 대한 사용량 진단이 정확히 이뤄져야 이를 ESS(에너지저장장치) 등으로 재활용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000개 미만인 국내 폐배터리는 2025년 8300개로 증가하고 2029년이면 8만개로 급증할 전망이다.

◇주행 데이터 놓고 신경전도

배터리 관리 서비스는 전기차 주행에 따른 상태 변화 등 주행 데이터를 근거로 한다. 데이터 확보 과정에서 배터리 업체와 완성차 업체 간 신경전도 벌어진다. 배터리 업체들은 주행 데이터를 받아 제품 개발과 폐배터리 활용에 이용하고 싶어하지만 주행 데이터를 보유한 완성차 업체들은 이를 내켜 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 SK온은 케이카, SK렌터카, LG에너지솔루션은 롯데렌탈 등 렌터카나 중고차 업체와 협업 중이다.

완성차 업체의 견제는 배터리 내재화 이슈와도 관련돼 있다. 예컨대 중국 업체 BYD나 테슬라는 배터리와 전기차를 동시에 만들고 있고 GM, 폴크스바겐, 포드도 합작사 등을 통해 자체 배터리 제조에 나섰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잠재적인 경쟁자인 데다 가격 협상 상대인 배터리 업체에 데이터를 제공할 유인은 적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주행 데이터가 품질과 이윤의 기반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이를 둘러싼 업체 간 눈치 싸움도 치열해지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