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사업비가 무려 5000억달러(약 640조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 인프라 수주 대전(大戰)이 시작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북서부 홍해 인근 2만6500㎢ 부지에 서울의 44배 면적 미래도시를 짓는 ‘네옴(NEOM) 시티’ 프로젝트다. 우리나라 올해 예산(607조원)을 뛰어넘는 거대한 사업이지만, 입찰은 철저한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선 삼성·현대차그룹이 사업 수주전에 뛰어들었고, 대규모 수주에 성공할 경우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사우디 ‘네옴(Neom) 시티’

◇물밑에서 진행 중인 640조원 프로젝트

네옴 시티는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것으로, 석유에 의존해온 경제를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 프로젝트다. 네옴 시티는 길이 170㎞에 달하는 자급자족형 직선도시 ‘더 라인’, 바다 위에 떠 있는 팔각형 첨단 산업 단지 ‘옥사곤’, 대규모 친환경 산악 관광 단지 ‘트로제나’로 구성된다. 높이 500m에, 세계 최대 너비를 가진 쌍둥이 빌딩도 들어설 계획이다. 1차 완공 목표는 2025년으로 도시에 필요한 주택·항만·철도·에너지 시설 등 대규모 인프라 입찰이 현재 진행 중이다.

그리스어와 아랍어로 ‘새로운 미래’라는 뜻의 네옴 시티 사업은 사우디가 철저하게 비공개로 입찰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선 대규모 인프라 사업 능력을 보유한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정도가 수주전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삼성물산·현대건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네옴 시티 ‘더 라인’의 터널 공사를 수주했다. 수주액은 약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로 알려졌다. 현대건설은 지난 14일 공시에서 “발주처와의 경영상 비밀 유지 협의에 따라 상세한 사항은 추후 재공시하겠다”고 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도 “수주 관련 내용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추가 수주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발주처의 요청 사항을 최대한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빈 살만 친분 덕 보나

2019년 6월 26일 오후 서울 이태원 승지원 앞마당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일행을 맞이하고 있다. 이날 방한한 빈 살만 왕세자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단독 만찬을 가진 뒤 늦은 시간 삼성그룹의 영빈관 격인 승지원으로 이동해 이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수석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들과 한밤에 차(茶)담회를 가졌다./주완중 기자

삼성그룹은 빈 살만 왕세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친분 덕분에 향후 수주전에서 최대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9년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했을 때, 삼성 승지원에서 단독 면담을 했고, 다른 주요 그룹 총수들과의 만남도 주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빈 살만 왕세자와 소통할 수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최고층 빌딩인 아랍에미리트 ‘부르즈 칼리파’ 건설에 참여해 기술력을 과시한 삼성물산이 이번 네옴 시티에 들어서는 초고층 빌딩을 비롯해 다수의 주택·플랜트 사업 수주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스마트 시티에 접목되는 인공지능·반도체·가전 사업 등에서 수혜를 볼 가능성도 높다.

최근 사우디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온 현대차그룹도 대규모 수주를 따낼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는 도심항공기·로봇·자율주행 같은 ‘스마트 시티’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어, 그룹 차원에서 네옴 시티에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특히 네옴 시티에서 바닷물을 이용해 그린 수소를 생산해 ‘세계 최대 수소 수출국’이 되겠다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어, 현대차는 수소연료전지와 수소차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의 사업 참여 사실이 전해지자, 재계에선 “1970년대 중동 건설 현장을 누볐던 한국이 이번엔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을 앞세워 제2의 중동붐을 일으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오일달러가 넘치는 사우디가 640조원을 투자한다는 건 빈말이 아니다”라며 “대규모 수주가 이어지면 최근 고조되는 경기 침체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성 연세대 교수는 “네옴 시티는 발주처에서 개발 사업에 적극 투자하는 기업들에 일감을 우선적으로 주는 형태로 자본력 있는 대기업이 아니면 수주가 어려운 구조”라며 “우리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외교적으로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