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현지 시각) 출시된 중국 창안자동차의 초소형 전기차 루민은 11시간 만에 1만5800대가 팔렸다. 루민은 전폭이 1545㎜, 휠베이스(바퀴 축 사이 거리)가 2가 채 안 된다. 현대차의 경형 SUV 캐스퍼보다도 작다. 그러나 4만8900위안(947만원) 안팎의 가격을 내세워 20~30대 직장인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창안자동차가 이런 가성비 전기차를 만든 것은 중국의 국민 전기차로 불린 상하이GM우링의 ‘홍광 미니’ 인기 때문이다. 홍광 미니는 500만원대 가격을 앞세워 작년 중국 내 전기차 판매 1위에 올랐다. 작년 한 해 동안 테슬라의 모델 Y(16만9800대)의 2배가 넘는 39만5451대가 팔렸다.
완성차 업체들이 잇따라 초소형 전기차를 선보이면서 전기차 시장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가성비와 함께 기술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자국 시장뿐 아니라 배달·운송 시장을 겨냥해 한국 시장 진출도 타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선 중소 업체들이 초소형 전기차를 시장에 출시하고 있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 업체들에 밀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2의 홍광 미니는 누구
초소형 전기차는 기존 승용차보다는 작고 이륜차보다는 크다. 국내에선 국토교통부가 무게 600kg, 최고 속도 시속 80km, 너비 1.5m, 최고출력 15kW(킬로와트) 이하 차량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포천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95억700만달러(12조3000억원)가량이던 세계 초소형 전기차 시장 규모는 2029년까지 221억1000만달러(28조70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중국에선 홍광 미니, 루민뿐 아니라 경쟁력 있는 초소형 전기차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GM과 상하이자동차는 공동으로 바오준 브랜드를 설립해 초소형 전기차 ‘e100’, ‘e200’, ‘e300’을 잇따라 내놨고, 지난해 말 체리자동차는 ‘QQ아이스크림’을 출시했다. 이 차량은 지난 5월 중국에서 전기차 판매 순위 5위를 기록했다. 중국에선 초소형 전기차가 전체 전기차 판매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시장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의 완성차 업체들도 초소형 전기차 시장을 꾸준히 두드리고 있다. 2012년 초소형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르노는 지금까지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를 3만3000대 이상 판매했고, 시트로엥은 면허 없이도 운전할 수 있는 ‘AMI’를 내놨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인도 등 개도국 시장 맞춤형으로 소형 전기차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현대차 인도 법인의 타룬 가르그 이사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현대차가 인도 시장을 위한 합리적 가격의 소형 전기차 개발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초소형 전기차, 전기차 시장 기폭제 될 가능성
국내에선 중소 업체들이 초소형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쎄보모빌리티, 디피코, 대창모터스, 마이브 등 10여 개 업체가 보조금을 적용할 경우 1000만원 내외로 구매가 가능한 차량을 주로 팔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싼 가격과 기동력, 주차 편의성 등이 장점이다.
국내 판매 규모는 한 해에 4000여 대에 불과하지만, 완성차 업계 전문가들은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다. 특히 다마스와 라보 등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발 역할을 하던 소형 상용차가 단종되면서 이 시장을 초소형 전기차가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미 대창모터스가 우체국 등에 초소형 전기차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내연기관차나 차주들이 출퇴근이나 여가용 세컨드 카로 초소형 전기차를 구매할 유인도 크다는 분석이다.
업체들은 해외 시장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선두 업체인 쎄보모빌리티는 최근 베트남 진출을 발표했다. 이들은 최근 베트남에서 열린 산업 전시회에 참석, 초소형 전기차 쎄보C를 전시해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초소형 전기 화물차 포트로를 판매하는 디피코도 아직은 소량이지만 폴란드와 그리스, 덴마크 등에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환경 오염이 상대적으로 심한 개도국은 전기차 전환 요구가 높지만 가격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초소형 전기차가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