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거인(BYD)의 굴기 뒤에 숨어 있는 ‘괴짜(nutty)’ 교수.”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일 중국 1위 전기차 기업이자 세계 3위 배터리 제조사 BYD의 약진을 분석하면서 단 기사의 제목이다. 괴짜 교수는 BYD의 창업주이자 CEO(최고경영자)인 왕촨푸(56)다. BYD는 올해 상반기 총 64만대의 친환경차(전기·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를 팔아 테슬라(56만대)를 제치고 글로벌 친환경차 판매량 1위에 올랐다. BYD의 시가총액은 약 164조원으로, 테슬라·도요타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시가총액이 높은 자동차 회사가 됐다.
라이벌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가 대담한 비전과 거침없는 언행의 괴짜 창업자로 꼽힌다면, 왕촨푸는 다른 의미의 괴짜다. 연구원 출신의 조용한 성품이지만 품질과 기술에 집요할 정도로 집착하고 무서운 속도로 사업 영토를 확장하기 때문이다. 빈농의 아들에서 중국 최대 전기차 회사를 일궈낸 왕촨푸는 이제 중국의 5번째 거부가 됐다. 10일 경제지 포천에 따르면 왕촨푸의 순자산은 약 270억달러(35조원)로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263억달러)도 제쳤다. 올해 3월 대비 BYD 주가가 90%나 급등한 덕분이다.
◇빈농의 아들에서 스물아홉 창업자가 되기까지
왕촨푸는 안후이성 가난한 농부 8남매의 일곱째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났고, 형제들이 학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왕촨푸의 대학 공부를 지원해줬다. 중난대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한 그는 베이징유색금속연구원의 배터리 연구원을 거쳐 학생을 가르치다 사업가의 길로 틀었다.
왕촨푸는 사촌 형에게 돈을 빌려 광둥성에서 1995년 BYD를 창업했다. 휴대폰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였다. 당시 일본이 배터리 산업을 꽉 잡고 있었지만, 왕촨푸는 일본과 경쟁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인건비 경쟁력을 활용해 자체 제조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는 데 집중했다. 그랬더니 가격이 경쟁사 제품보다 40% 정도 싸졌다.” 당시 다른 중국 기업들은 일본 장비와 재료를 들여와 단순 조립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BYD는 자체 기술 확보에 매달렸다. 왕촨푸는 매일 새벽 1~2시에 퇴근했다. 딸이 태어났을 때에도 수일 뒤에 집에 들어간 일화도 유명하다. BYD는 창업 후 3년 연속 매년 100%씩 성장했고 휴대용 전자기기와 장난감에 많이 쓰이는 니켈카드뮴 배터리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40%를 달성했다.
2003년 왕촨푸는 시안친촨자동차를 인수했다. 앞으로 차에 배터리가 달릴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배터리로 번 돈을 모두 적자인 전기차에 쏟아부었지만, 왕촨푸는 고집스럽게 “전기차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2003년은 테슬라가 설립된 해다. 이후 2010년대 중국이 전기차 진흥 정책을 펼치면서 BYD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전기차 제조의 A부터 Z까지
왕촨푸는 일찍이 공급망의 중요성을 알아봤다. 그는 2018년 “모토로라·노키아 등 전 세계 휴대폰에 배터리를 공급해봤더니 작은 부품 하나만 고장이 나도 휴대폰이 먹통이 됐다”면서 “최종 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기술을 마스터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전기차 배터리와 차량용 반도체 제조를 시작했고, 광산 인수를 통해 배터리 원자재 확보에도 나섰다. 현재 BYD 전기차의 부품·원자재의 90%는 모두 BYD가 자체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료와 최종 제품까지 전기차의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셈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올해 세계 시장 점유율은 3위(12.1%)다. 칼날처럼 길쭉해 ‘블레이드 배터리’라 불리는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직접 개발했는데, 50t 트럭이 밟고 지나가거나 송곳으로 찔러도 불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내구성을 끌어올렸다고 한다. 왕촨푸는 “배터리 폭발이야말로 전기차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라면서 배터리 화재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는 조심스럽고 조용한 인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에 반하는 메시지를 절대 내지 않고, “회사의 목소리는 단 하나뿐이어야 한다”며 돌출 발언도 하지 않는다. FT는 “왕촨푸는 이제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을 노리고 있다”며 “BYD의 남은 과제는 내수 시장을 떠나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